<기획> 장항습지의 오늘과 내일 - 4. 장항습지의 지혜로운 활용, 어떤 선택 가능할까

현행 탐방 프로그램 규모와 시기 재고해야
탐방 욕구와 보전 사이 지혜로운 해법 모색 시급
교육과 체험 수요 해소할 ‘대안 습지’ 고민해야

 

늦가을 장항습지를 찾아와 한겨울에 남쪽으로 떠나는 기러기의 일종인 천연기념물 325호 개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장항습지 기획 기사 연재를 준비하며 기자는 6월 말 장항습지를 찾았다. 감춰진 생태의 비경을 만나는 설렘과 함께 선버들 군락 하부에 육상식물이 자라고, 갯벌이 초지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40여일 만에 다시 장항습지를 찾았다.

그 사이 큰 비가 제법 내렸으니, 습지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쉽게도 육화를 저지할 만큼의 큰 범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선버들 숲 아래 물골이 충분히 잠길 정도의 수면상승은 있었나보다. 물기가 남아있는 물골마다 말똥게들이 잔뜩 모여 방문자의 발소리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웅덩이 안에는 말똥게들이 탈피하며 남긴 반투명한 껍데기들이 가득하다.

외래 식물의 유입 속도는 역시나 우려스럽다. 한여름을 지나며 가시박, 족제비싸리 등이 여기저기서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모습이 완연하다.

갯벌 상황은 어떨까? 6월에 찾았을 때 발목 정도 높이로 올라와 있던, 돌피를 비롯한 풀들이 어느새 사람 키 높이로 자라 길을 가로막는다. 퇴적된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갈대, 골풀, 세모고랭이, 새섬매자기 등이 힘겨운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장항습지는 역동적인 생명력을 분출하며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었다.
 

(사)에코코리아 회원들이 장항습지 탐방로를 중심으로 생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습지의 지혜로운 이용

연재의 마무리에서는 습지의 적절한 ‘이용’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환경부가 주기적으로 ‘국가습지보전전략’을 발표하는데, 2차 발표 전략의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습지의 현명한 이용’이 거론됐다. 생태적 측면에서 ‘습지’와 ‘이용’은 서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습지가 나날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보전에 방점을 찍기에도 급급한 마당에 ‘이용’은 섣부른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습지의 소중함을 올바로 알리고, 시민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기에 습지만큼 좋은 교육 현장이 또 있을까. 한마디로 습지 가치의 인식 증진이라는 면에서 탐방과 교육, 학습을 아우르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장항습지를 대중의 공공자산으로 되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용의 필요성과 이용에 수반되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지혜로운 해법은 뭘까?

장항습지 탐방 프로그램의 개선점

현재 장항습지는 제한적으로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생태해설사 1명당 15명의 인원을 상한선으로 삼아 기본 3시간의 탐방이 이뤄진다. 2016년의 경우 총 46회 탐방을 통해 1270명이 장항습지를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탐방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입장은 전문가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고양시는 탐방객의 최대 숫자가 제한돼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한동욱 본부장은 현재의 탐방 프로그램이 전문성이 결여된 채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탐방 전과 후의 모니터링을 통해 습지 생태계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탐방 규모와 방식을 재설계하는 적응적 관리방식(adaptive management)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에코코리아 이은정 사무처장도 탐방 프로그램 운영 시기를 신중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철새가 찾아오는 10월 하순부터 3월 초순까지는 사람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박평수 공동대표는 장항습지 생태탐방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민감한 생태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장항습지를 굳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개방해야 하냐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겨울 AI의 여파로 탐방 프로그램이 잠정 중단된 덕분에 장항습지를 찾는 재두루미의 개체수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어린이식물연구회 심은영 교육팀장은 강사 1인당 탐방인원을 줄이고, 현재 환경교육단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시가 직접 운영·관리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고양시 환경친화사업소 권지선 소장은 탐방 방식과 시기에 대한 다양한 지적을 경청해 문제점이 확인되면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몇 해 전만해도 갯벌흙이 덮고 있던 지역에 피를 비롯한 다양한 풀들이 사람 키높이까지 무성하게 자랐다.
장항습지 버드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한강 본류까지 펼쳐진 퇴적층의 폭이 자그마치 400m를 넘는다. 다양한 풀들이 세력을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철책선 사라지면 개방 압력 높아질 듯

장항습지에 대한 시민들의 개방 요구를 일정 선에서 저지하고 있는 건 자유로를 따라 2중으로 설치된 군사 철책선이다. 하지만 철책은 단계적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현재 행주대교 하단에서 김포대교 방향 일부 구간의 1차 철책선은 이미 철거됐다. 철책선이 개방되면 시민들의 한강 접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좁혀져 당연히 장항습지 탐방 확대 요구가 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항습지의 ‘이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다. 권지선 소장은 일단 향후 1차 철책선이 제거되더라도 2차 철책선은 유지하기 때문에 장항습지가 무분별 개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박평수 공동대표는 철책선을 제거하는 대신 적절한 수종을 선택, 식재해 자연 울타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무로 이어진 숲이야말로 사람의 공간과 장항습지 사이에가장 좋은 완충재라는 것이다.

대안습지 조성의 필요성

시민들의 장항습지 접근 욕구를 생태 보전이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잠재울 순 없다. 보다 적극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생태 전문가와 활동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배후 체험 습지의 조성을 이야기한다. 희소가치가 높은 장항습지 자체는 가능한 한 개방을 최소화하고, 장항습지와 인접한 곳에 인공의 대안 습지 공원을 조성해 그 곳에서 교육과 탐방, 체험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안 습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세계적 맹그로브 습지인 마이포 습지와 주거 단지 사이에 인공 습지공원을 조성해 양질의 생태 교육과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홍콩의 예는 장항습지가 모델로 삼아봄직한 본보기다. 국내에서도 생태적 가치가 높은 순천만으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수요를 배후에 조성한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소화하기도 한다.

한반도 유일의 대하천 하구 기수역 상부 습지 생태계를 품은 장항습지의 이름값과 서울에 인접한 편리한 접근성을 고려할 때, 장항습지 배후에 잘 설계된 인공 습지 생태공원을 만든다면 습지 보전과 생태 관광 명소로서의 발돋움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항습지 물골에 말똥게들이 가득하다.

신평동 한강변에 조성될 생태공원

장항습지를 대체할 습지생태공원의 첫 번째 후보지는 신평동 한강 둔치다. 한강유역을 관리하는 국토부가 진행하는 한강정비사업 계획 추진과 관련해 고양시가 신곡수중보 상류에 체험형 습지생태공원을 조성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현재 농경지, 또는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이곳을 갯골이 살아있는 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은 빠르면 내년에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곳은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에서 제외된 곳이라 조성 방향에 따라 생태 보전적 가치보다는 방문자의 접근성과 쾌적함에 방점이 찍히는 공간으로 조성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은정 사무처장은 신평동에 조성될 한강변 습지공원이 최소한 서울의 강서습지생태공원이나 고덕수변생태복원지 수준으로 조성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장항천을 활용한 대안습지공원

신평동 한강변 습지공원보다 더 관심을 끄는 후보지는 장항IC 안쪽 이산포 방향의 자유로와 제2자유로 사이의 땅이다. 현재 농경지와 비닐하우스 등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에는 장항천이 흐르고 있다. 생태 전문가들은 장항천과 주변 부지를 활용해 장항습지의 배후 생태 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장항습지 보전과 시민들의 체험 욕구를 해결할 최선의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항천 배후 습지공원 조성은 단순히 교육과 체험 공간의 확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유로가 생기기 전 하나로 이어졌던 생태 공간을 연결해 줄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장항습지 안쪽의 장항동과 대화동 평야지대에는 청년스마트타운, 방송영상밸리, 경기북부테크노밸리 등이 순차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계획된 개발이 마무리되면 장항습지는 생태적 고립을 피하기 어렵다. 유일한 숨통은 바로 장항천이다. 신평동에서 시작해 자유로 안쪽을 휘돌아 흘러 물길이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장항천과 주변의 부지가 생태하천과 배후 습지로 복원되면 장항습지는 든든하고 안정적인 생태적 파트너를 얻게 된다.

권지선 소장은 장항천 배후습지 복원 방안을 환경부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장항천을 연결고리삼아 장항습지와 한강의 생태 구성원들이 장항습지와 배후습지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하나로 모아 내는 작업을 하루 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여름철에 장항습지를 찾는 귀한 손님 저어새. 천연기념물 205호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 버드나무숲의 누룩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기반연구본부장, 박평수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공동대표, 심은영 어린이식물연구회 교육실장, 이은정 (사)에코코리아 사무처장

※ 이 기사는 생태전문가, 환경활동가, 행정관계자(권지선 환경친화사업소장)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편의상 인용부호 없이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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