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도시의 속살 골목여행’

한양문고 마두점 ‘트래북스’에서 기획
인문적 성찰 곁들인 도심 걷기여행 진행

 

매 주 화요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골목여행’ 회원들. 사진 왼쪽부터 박의영·조수안 회원, 이성한 대표 진행자, 이옥진·윤영한 회원.


[고양신문]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 눈도장 찍듯 명소를 둘러보고 오는 틀에 박힌 여행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풍경을 찾아내는 ‘주체적인’ 여행이 각광받는다. 시간과 돈을 들여 먼 곳을 다녀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가까이에 존재하는 공간들이 풍성한 이야기를 품은 멋진 여행지로 다가온다.

한양문고 마두점의 여행콘텐츠 플랫폼 ‘트래북스’는 여행의 새로운 트랜드를 생산하는 베이스캠프다. 서울의 골목 구석구석을 걸으며 재미난 여행을 즐기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도시의 속살 골목여행(이하 골목여행)’ 회원들을 한양문고 마두점에서 만나보았다.

걷고, 듣고, 이야기하며 새로운 세계 발견

“여름 내내 9월 첫째 주 화요일이 빨리 찾아오기를 기다렸어요.” 윤영한씨의 설레임에는 이유가 있다. 트래북스 골목여행이 여름방학을 끝내고 가을학기 첫 나들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영한씨는 지난 봄 우연히 참가한 골목여행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도심 걷기의 재미를 맛보았다. “저처럼 서울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아무래도 좀 낯설고 딱딱한 동네예요. 그런데 골목여행을 함께 하며 서울의 구석구석에 숨은 골목 풍경과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날 수 있어 너무 행복했어요.” 그동안의 일정 중 부암동과 서울미술관, 윤동주문학관을 거쳐 백사실계곡을 둘러본 날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영한씨는 이 참에 골목여행을 소개한 책도 샀다며, 새로 만난 취미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영한씨와 달리 여고시절 서울 한복판으로 학교를 다닌 이옥진씨도 도심 골목여행을 통해 서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심히 지나쳤던 골목 풍경들 속에 그토록 많은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이 숨어있는지 미처 몰랐어요.”

박의영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로 길상사와 심우장, 최순우 옛집과 수연산방을 이어 걸었던 성북동 골목을 꼽았다. “길상사에서 백석의 시를, 심우장에서 만해의 시를 낭송했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요.” 

아이들을 키울 때 손을 잡고 유적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나중에 어른들끼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곤 했다는 조수안씨도 골목여행을 만나 소원을 풀게 됐다. “도심걷기는 단순한 둘레길 걷기와는 차원이 다른 매력이 있어요. 뭔가 비워졌던 부분이 채워지는 뿌듯함이랄까요?”

이옥진씨와 조수안씨는 4월 말 시작된 도심여행 1학기 12회차를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골목여행 첫 나들이를 열었던 성북동길(4월 18일)


도보여행에 인문적 시선 보태

골목여행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이는 트래북스에서 국내 테마여행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이성한 대표다. 걷기 모임 ‘고양올레’를 오랫동안 이끌며 일찌감치 ‘도보여행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 대표는 풍부한 문화유산답사와 동호회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도심 골목길 나들이에 인문적 성찰의 시선을 보탰다.

“걷기를 단순히 건강이나 관광이 아닌, 역사와 삶의 흔적을 더듬는 차원으로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도시의 골목마다에는 그곳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다층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니까요.”

매 주 코스를 선정하는 과정은 고민스러우면서도 즐거웠다. 지역이 정해지면 역사와 인물의 흔적을 품은 포인트를 몇 군데 정하고, 그 점들을 선으로 잇다 보면 어느 새 이야기가 보태지고 콘텐츠가 풍성해졌다. 골목여행을 앞두고 코스를 사전 답사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진행할 프로그램들을 머릿속에서 미리 그려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능하면 과거의 역사와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사회의 모순과 질곡에 대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싶었어요.”

경의선숲길을 지나며 이한열기념관과 김대중도서관을 들르고, 남산길을 걸을 때는 유스호스텔 자리에 유신시절 서슬 퍼렇던 중앙정보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각성시킨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낙산 성곽길과 대학로 나들이(5월 23일).
북촌 나들이(5월 16일)



고양시·경기도로 나들이 영역 확대

트래북스의 골목여행은 사실 시험 삼아 시작됐다. 골목과 걷기와 인문적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결합시켜보자는 아이디어가 정기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이 참여할지도 미지수였다. 연령과 성별 제한은 없지만, 50대 중반의 여성들이 주로 참여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자녀들을 키워놓고 사회적으로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시절은 거꾸로 자아를 돌아보며 인문적 성찰을 하기 좋은 시절이라는 생각에서다. 예상은 얼추 들어맞았다. 참가자들은 정서가 비슷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진폭 넓은 공감의 장을 만들며 프로그램의 성격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조수안씨는 “그동안 바쁘게 살다 보니 좀처럼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지 못했는데, 도심여행이 나에게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선물해줬다”고 했고, 윤영한씨는 “여행은 어디 멀리 떠나야만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졌다”면서 잠깐의 시간만 주어져도 가까운 곳으로 충분히 멋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았다고 했다.

4월 말 시작된 트래북스 골목여행은 그동안 성북동, 북촌마을, 낙산 성곽, 망원동 골목 등 서울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기며 12번의 나들이로 1학기를 마무리했다. 9월부터 시작되는 2학기 프로그램에는 고양시 골목 코스도 살펴 볼 예정이다. “코스는 아직도 무궁무진해요. 서울만 해도 40회 정도는 충분하지 싶습니다. 경기도로 권역을 넓히면 말할 것도 없구요.”

나들이를 다녀 온 흔적들은 인터넷 카페에 차곡차곡 갈무리된다. 머잖아 풍부한 정보와 친절한 시선을 담은 골목여행 안내서로 묶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절두산 성지와 망원동 나들이(6월 12일)

문학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 대기

트래북스 국내여행팀은 골목여행 외에도 인문학과 여행이 만나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 여행’을 제안하고 진행할 계획이다. 이달부터는 문인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문학기행 프로그램 ‘벗들과 함께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시작한다. 9월부터 12월까지 매 월 둘째 주 토요일에 박인환, 황순원, 신동엽, 이태준을 주인공 삼아 인제와 양평, 부여, 철원 일대를 여행한다. 문학기행에 이어 ‘역사 속 여성들의 흔적’을 찾는 특별한 나들이 프로그램도 기획중이다. 겨울방학 기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와 여행과 글쓰기를 결합한 재미난 프로그램을 궁리하고 있다.

그동안의 여정과 앞으로의 일정이 궁금한 이들은 네이버 카페 ‘트래북스’(cafe.naver.com/travooks)를 살짝 들여다보자. 당신이 꿈꾸던 새로운 여행의 세계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문의 010-5161-4918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