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불교설화를 보면, 부처가 득도를 한 후 자신이 깨달은 것이 너무나 어려워 대중에게 전파할 수 없어 설파를 포기하려는 대목이 나온다. 그때 온갖 신들이 내려와 부처에게 간청하기를, 진흙 속에 있는 연꽃은 포기하시더라도, 진흙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꽃에게는 기회를 달라 했다. 부처의 설법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 이유다. 혼탁한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생들이 들으면 섭섭해했을 대목이다.

굴원의 『초사』에도 말미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세상 세태에 따라 처세를 하겠다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높디높은 곳에 사는 선비들이야 그렇다치고, 창랑의 흐린 물에 살아가는 민중들은 한숨만 늘어간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사실이 아니라고, 용은 더 이상 개천에서 안 난다고, 말하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주요대학의 고소득층 학생 비율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대의 경우 9~10분위 추정 학생 비율이 73.6%인데, 9분위 이상은 가구의 월소득이 893만원을 넘었다. 부모의 소득이 입학을 결정한다는 사례이자,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상징적 지표라고 한다. 어렵사리 서울대에 들어가 장학금을 신청하고, 모자라는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는 최저소득 수준의 학생은 10%대라 하니, 가히 부자들의 대학이다. 부모 잘 만나면 출세하고, 못 만나면 개고생하는 빈부의 법칙이 다시 확인된 듯하여 입맛이 씁쓸하다. 9분위는커녕 7~8분위도 못되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정당별 국회의원 평균 재산을 보니 내 신세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국민의당이 77억원, 새누리당이 36억원, 더불어민주당이 12억원, 정의당이 4.2억원이다. 물론 국회의원 간의 격차야 나겠지만, 이 정도 재산을 가진 의원들이 선택하는 정책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지 어림짐작된다. 국회도 부자들의 국회인 셈이다. 국회의원에게 멸사봉공의 자세를 외친다한들, 자신의 처지에 반하는 법안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일 터다.

이러나저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진흙탕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그럼 어쩔 것인가? 진흙탕을 맑힐 것인가? 더러움을 없애고 정화시킨다는 명목 하에 벌어진 일들의 결과를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수십조, 수백억을 쏟아 부어도 국민에게 해택이 오기는커녕 부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흙탕에 사는 미꾸라지에게 용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어 미꾸라지 정체성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용이라 생각하는 미꾸라지가 생겨나,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고 집단최면을 걸었다. 집단최면의 결과는 과로사와 자살, 편집증과 정신분열증의 형태로 드러났다. 남이 쥐어짜지 않아도 스스로 쥐어짜며 행복이 올 것이라, 성공할 것이라 헛된 믿음을 갖게 되었다.

헛되고, 헛되다. 만방의 미꾸라지들이여! 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용과 싸워야 한다. 용이 되려면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고, 미꾸라지답게 ‘하고 싶다’를 외쳐야 한다. 삶의 거처인 진흙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진흙탕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야 한다. 기실 진흙탕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생태의 보고이고, 삶의 터전이다. 진흙탕을 더럽다 하거나, 혐오하는 무리들과 절교하고, 진흙탕을 거점으로 우리의 낙원을 만들어보자. 진흙탕의 철학과 정치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증명해보자. 진흙탕에서 실컷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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