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마르쉐, 리버마켓, 마켓움, 벨롱장…

[고양신문] 매월 둘째 주 일요일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을 꽉 채운 장터.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농부시장’을 표방하며 2012년부터 시작된 마르쉐(Marcheat)장터이다.

또한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은 성수동 서울숲 앞 ‘언더스텐데 에비뉴’에서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장터가 펼쳐진다. 150여 개의 출점팀들이 참여해 하루 7000~8000여 명이 다녀간다. 연초 운영위원들이 기획을 해 출점팀들에게 알려주고, ‘씨앗, 열매, 발표, 토종’ 등의 주제에 맞게 농부와 요리사가 만나 대화하며 준비하고 농부는 그 옆에서 곡식을 판매한다. 농부시장이라서 수공예품은 10~20%를 넘지 않게 배치한다.

그리고 매주 1·3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양평 두물머리 근처 문호리에서 ‘리버마켓 River Market’이 열린다. 지난 8월 23일엔 100번째 장이 열렸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와 과일, 예술가들의 핸드메이드공예와 예쁜 업사이클 제품과 다양한 먹거리들로 넘쳐나고 여기에 예술공연도 함께한다.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서로 급할 것도 다툴 것도 없이 친밀한 대화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리버마켓은 이제 더 넓어져, 매주 둘째 주 토·일요일에는 도자기로 유명한 여주 신륵사에서, 그리고 셋째 주는 같은 장소에서 아티스트 프리마켓이 진행된다.

부산의 기장군 동백리의 바닷가 캠핑장의 한 창고에서 시작된 ‘창곶’이 발전한 ‘마켐움’이 두 달에 한 번 3일간 열린다. 또 부산 달맞이 고개 해월정광장 일대에서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부터 ‘달맞이 아트마켓’이 열린다. 제주 동쪽 서화해변에서는 ‘반짝’이라는 뜻의 제주방언을 딴 ‘벨롱장’이 열린다.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는 매주 토·일요일 ‘서귀포예술시장’이 열리고 함덕 서우봉 잔디광장에서는 ‘멘도롱장’이, 춘천의 KT&G 상상마당에서는 ‘호반장’이 열린다. 원주 중앙시장에는매달 둘째 주 토·일요일 ‘미로카니발’이라는 마켓이 열리며, 대전시청 남문잔디광장에는 ‘플레이 마켓’이,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앞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브릿지 디 마켓’이 열린다.

그리고 대구의 동화사에서는 오는 10월 6일부터 9일까지 대규모 ‘승시 마켓’이 올해로 8번째 열린다. 고려시대부터 운주사, 선운사, 동화사, 부인사 근처에서 사찰에서 만든 불교용품을 거래하는 ‘승시, 중장터, 승장평’이라는 장터가 있었던 것을 오늘날 마켓형태로 재현하는 것이다.


현대판 5일장,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시장은 사고파는 사람들이 만나 거래하고 매매가 이루어지고 물자가 유통되는 장소이다. 대부분 전통시장은 5일장이다. 5일에 한 번 열리면 공급자나 수요자를 집중시킬 수 있고, 서로 다른 개시일을 이용하여 4~5개의 시장을 돌면서 중소상공인들이 매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일장은 과거 1926년에는 1356개였지만 1980년부터 급격히 감소해 1998년에는 569개로 2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교통 발달도 있지만 이농으로 인해 농촌인구가 줄어든 이유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대형마트와 편의점들이었다.

시골에서 장날은 어른들에게나 아이들에게나 특별한 날이었다. 5일에 한 번씩 펼쳐지는 시장은 마음 설레는 축제의 장이었다. 어른들은 이번 장에 계란을 팔거나 물건을 팔아 밑천을 만들 궁리를 하고,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사탕이며 때때옷을 사다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저녁이면 동구 밖을 기웃거리며 장에 간 아버지나 어머니의 손에 든 물건에 온통 관심을 가졌다.

장에서 거래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귀고, 혼사가 이루어지고, 이마을 저마을 소식을 전해 듣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놀이가 있고 축제가 있었다. 서로 얼굴을 알기 때문에 잘못된 물건을 팔거나 나쁜 물건, 혹은 바가지를 씌워 팔면 대번 시장에 소문이 난다.

판매하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사고팔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너면 판매자가 누군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시장, 그래서 얼굴이 있는 상품, 얼굴이 있는 거래관계, 따뜻한 시장이었던 것이다.


따뜻한 경제를 탈환하라

그러나 오늘의 현대시장은 생산자의 얼굴을 알 수 없다. 더욱이 무역의 발달로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팔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생산자는 제초제, GMO농산물, 농약 등을 함부로 사용한다. 소비자는 그 물건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갔는지, 어떠한 비인권적 상황이 전개되는지 알 턱이 없어 그저 가격으로만 구매를 결정한다. 오로지 돈만 벌면 되는 기업과 오로지 가격이 싼것만 찾는 소비자만 있을 뿐이다.
얼굴이 없는 거래, 차가운 시장이 된 것이다. 대면성은 없어져 차갑고 비정한 돈벌이의 경쟁만 존재한다.

그래서 마르쉐나 리버마켓, 마켓움, 벨롱장, 미로카니발 등은 바로 차가운 시장을 따뜻한 시장으로 바꾸려는 5일장의 재현이다. 유기농산물 생산자부터, 요리사, 공예품작가, 업사이클 작가, 버스킹 연주자, 푸드트럭 상인 등이 대화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난장이 펼쳐진다. 당연히 이러한 장이 펼쳐지는 곳은 지역상권도 덩달아 활성화된다.

이렇게 기존의 ‘지불노동’을 ‘대안적 지불노동’으로 도약대삼아 ‘부불(不拂)노동’으로 사회영역을 넓히는 것, 자본주의 기업이 아니라 대안적 기업을 통해 ‘비자본주의 기업’을 확장시키는 일, 시장거래에서 ‘비시장선물거래’를 넓혀나가는 일, 사유재산보다 공유재산을 보호하는 일, 주류금융시장에서 비시장적 금융을 넓혀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확대시키는 일이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의 탈환’이라고 말한다.

과거 벼룩시장 개념의 ‘플리(flea) 마켓’이나 예술시장인 ‘프리(free) 마켓’은 협동조합, 공정무역, 로컬푸드, 지역통화, 공유사회운동과 더불어 해월이 말하는 ‘비단깔린 장바닥’이며, 김지하의 ‘시장의 성화(聖化)’이며, 칼 폴라니의 ‘호혜경제, 호혜시장’인 것이다.

일산은 100만 명의 도시임에도 두레생협에서 벌이는 업사이클(Upcycle)마켓이나 백석역근처 벨라시타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띵굴마켓이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 호수공원, 미관광장, 알미공원 등 더욱 큰 광장이 있는 일산에 이러한 축제가 결합된 대규모 프리플리마켓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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