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팔월 하순에 농장의 공동체 회원들과 함께 육십 평 김장농사를 지었다.

무와 쪽파와 갓은 키우기 쉽지만 배추는 제대로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비닐을 씌우고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사용하면 배추농사는 쉽다. 그냥 신경 딱 끊고 이따금씩 물이나 주면 된다.

그러나 유기순환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배추는 심은 바로 그 날부터 벌레의 공격을 받는다. 배춧잎을 갉아먹는 벌레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없이 천연농약의 힘을 빌린다. 작년까지는 제충국이라는 국화추출물로 만든 농약을 썼는데 올해에는 돼지감자로 농약을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배춧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조금씩 갉아먹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눈 감아 줄 수 있다.

벌레의 공격이 심하지 않으면 아무리 천연농약이라도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다. 자연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생태계가 건강하면 천적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해충의 개체수를 조절한다. 그리고 식물은 어느 정도 벌레의 공격을 받는 게 좋다. 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모든 식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물질이 작물의 맛과 향을 월등히 좋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배추가 성장하는데 지장만 없다면 그래, 함께 먹고 살자 하는 마음으로 벌레를 못 본척 한다.

개인 밭에 양배추도 사십 포기 심어놨는데 어쩐 일인지 이곳에도 벌레피해가 거의 없다. 주변 농장에서는 벌레가 어찌나 극성인지 배춧잎을 그물망처럼 만들어 놓았다는데 시월이 다 되어가도록 이렇다할만한 피해가 없으니 굉장히 고마우면서도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봄 농사에 생각이 미쳤다. 봄이 되면 감자와 토마토와 가지 밭에는 무당벌레가 우르르 달려들어 숫제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올 봄에는 무당벌레 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많던 무당벌레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이런저런 분석 끝에 나는 흙에 답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년만 해도 밭을 만들 때 쇠스랑을 꽤 힘껏 휘둘러야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쇠스랑질이 정말 쉬웠다. 가볍게 내려놓기만 해도 쇠스랑 날이 흙 깊숙이 박혔고, 눈에 띌 정도로 몽글몽글해진 흙에서는 상쾌한 냄새가 났다. 작년까지 보지 못했던 곤충들도 굉장히 많아졌다.

흙이 건강해지면 해충 피해가 그만큼 줄어든다. 자연농법의 고수들은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농부가 편해지는 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흙이 건강해지면 해충피해뿐만 아니라 풀의 세력도 약해진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다. 살충제 달걀에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텃밭에서는 농약을 듬뿍 친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키운 작물은 벌레들도 먹지 않는다. 오히려 도망을 간다. 우리는 그런 작물을 아이들과 함께 일 년 내내 먹는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흙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흙이 건강해지기까지는 고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죽었던 흙이 살아나기 위해선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농사가 정말 편해지고 자연은 우리에게 놀라운 마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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