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올해는 무사히 지나가나 했는데 어김없이 배추밭에 진딧물이 왔다. 진딧물은 그대로 방치하면 무서운 속도로 번져서 텃밭을 점령한다.

부랴부랴 달걀노른자와 식용유와 물을 동량의 비율로 믹서기에 넣고 삼 분간 갈아서 난황유를 만들었다. 이십 리터들이 분무기에 난황유를 이백 대 일의 비율로 넣어주고 여기에 미리 만들어두었던 돼지감자로 만든 천연농약을 백 대 일의 비율로 함께 섞어서 알이 들어차기 시작한 배추에 흠뻑 뿌려주었다. 이튿날 살펴보니 진딧물이 말끔히 잡혔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다보면 벌레들이 이런저런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일주일 전에 수확한 땅콩은 굼벵이들이 수확량의 삼분의 일을 먹어치웠다. 가뭄 때문에 가뜩이나 수확량이 확 줄었는데 꽤 속이 쓰리다. 그래도 고구마는 굼벵이 피해 없이 깨끗하게 잘 나와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벌레들과 나눠먹을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학농약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화학농약은 흙을 황폐화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래서 화학농약을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화학비료에 의존을 하고, 화학비료는 흙을 더욱 메마르고 척박하게 만든다.

화학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적잖은 사람들은 에이, 하고 손사래를 치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벌레하고 나눠먹는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지 못한다. 아주 사소한 벌레 피해에도 농사를 망쳤다고 짜증을 낸다. 배추 오십 포기 가운데 서너 포기만 해충의 피해를 입어도 입버릇처럼 농사 망쳤다고 하고, 고구마 몇 알만 굼벵이가 먹어도 농사 망쳤다고 신경질을 부린다.

그때마다 도대체 무슨 농사를 망쳤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 농장에서는 아무도 농사 망쳤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작년에 우리는 고자리파리 병이 도는 바람에 양파모종 칠천오백 개를 심어서 팔백 개 수확을 하고, 마늘 사천오백 쪽을 심어서 육백 개쯤 수확을 했다. 뿐만 아니라 쪽파농사 이십 평을 지어놓고도 고자리파리 병 때문에 쪽파를 사먹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농사 망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들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분석해서 방법을 찾았다. 우리는 고자리파리 병이 돈 원인을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축분퇴비에서 찾았고, 과감하게 균배양체 퇴비로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끊임없이 자연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농사는 그냥 지으면 된다고 아주 손쉽게 생각한다. 그리곤 사소한 피해에도 자연을 적대시하면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로 자연을 해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모든 답은 자연 속에 있다. 우리 농장에서는 해마다 눈에 띄게 벌레 피해가 줄어들고 있다. 배추밭에도 진딧물이 잠깐 낀 것 빼고는 이렇다할만한 피해가 없다. 모두가 자연과 공존하고자 애쓰면서 생태계가 다양해진 덕분이다. 자연에는 해충만 있는 게 아니다. 익충이 더욱 많다.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는 각오해야만 한다. 우리 농장에서는 그 정도 피해쯤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자연이 우리에게 열 개를 베풀면 두세 개쯤은 자연에게 돌려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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