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관산간 도로 예정구간 현장에 가보니

[고양신문]고봉동 산자락 아래에 자리잡은 성석동 진밭마을은 500여 년 전부터 전주이씨, 순천김씨, 함종어씨 등이 집성촌을 이뤄 살아온 지역이다. 오래전부터 자연부락 단위로 두레공동체를 조직해 농사를 지어온 이곳 주민들은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옛 풍습을 묵묵히 지켜가며 살아오고 있다. 고양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진밭두레도 바로 이 동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난 7월 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김포~관산 간 도로계획이 알려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생태파괴적 측면뿐만 아니라 마을단절, 소음분진 등 다양한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주민대책위와 공대위 등의 반발로 기존 노선 안에 대한 전면재검토 결정이 내려졌지만 도로계획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 이에 대책위는 “도로계획 자체에 대한 전면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최성 시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포~관산 간 도로 도면을 놓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임병세 공동대책위원장<사진 왼쪽>과 정상호 공동대책위원장<사진 오른쪽>

고봉누리길 단절, 교통량 해소효과도 의문 

“환경피해도 문제지만 만들어진다고 해도 별다른 실효성이 없는 도로예요. 대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인지 모르겠어요.”

도로개설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진밭마을 도로계획 현장을 방문했던 지난 1일. 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병세씨는 도로계획도면을 하나씩 짚어가며 문제점을 제기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김포~관산간 도로는 고봉산을 뚫고 나온 뒤 함종어씨 선산을 지나 이 마을의 농지를 가로질러 나간다. 성석동 9통, 10통을 가르게 되는 셈이다. 15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임 위원장은 “고봉산은 고양시의 상징과도 같은 산인데 이곳을 뚫고 지나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노선대로라면 시민들이 애용하는 고봉누리길도 끊어지고 이곳 진밭마을이 지역사회와 단절되는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병세 공동대책위원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도로가 계획돼 있다.
계획된 도로에 따르면 기존 2차선 도로를 토성을 쌓아 가로질러 지나가게 된다.

정상호 대책위 공동위원장 또한 “이 도로의 목적이 파주 운정지구 교통량을 통일로로 분산시킨다는 것인데 대체 그곳을 이용하는 교통량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며 “고양시에 별다른 실익도 없는 도로를 생태환경까지 파괴해가며 굳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목적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주민의견 없이 일방적 노선결정

논란이 되고 있는 김포~관산간 도로는 운정지구개발로 인한 통행량 문제 해결을 위해 2012년 LH로부터 처음 제안됐다. 당초 노선은 황룡산을 지나 기존도로인 지방도 363호선과 근접해 통과하는 안이었지만 도로예정구간에 다세대주택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계획안이 변경됐다. 이후 LH와 고양시는 2, 3안을 두고 논의를 거친 뒤 현재의 최종안(4안)을 확정했다. 주거밀집지역을 우회하는 대신 고봉산을 깎아지르며 2개의 터널을 뚫고 마을을 지역사회와 단절시키는, 주민들 표현으로 기형적인 형태의 노선이 생겨난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르킨 구간이 성석동 진밭마을에 영향을 미치는 구간.

이곳 주민들은 7월 말이 돼서야 도로계획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정상호 공동대책위원장은 “주민 몇 분이 설명회를 다녀오더니 ‘이 근처에 도로가 생긴다고 하더라’라고 해서 급하게 확인해봤다. 이미 노선안은 결정돼 있었고 주민들에게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부랴부랴 주민대책위를 만들고 도로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는 정 위원장. 현재까지 5000여 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으며 8월 초 시장면담까지 진행했지만 고봉산 경유노선에 대한 ‘전면 재검토’ 결정 외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던 사이 고봉산 터널 반대를 위해 결성된 시민공대위가 매일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구 유은혜 국회의원도 며칠 전 고봉산 현장방문을 다녀왔다고 한다.

시민들이 달아놓은 고봉산 터널 반대 리본

'노선재검토' 아닌 '도로계획 원점논의'돼야

최성 시장은 지난 9월 시정질의 답변을 통해 “공동대책위를 포함한 민관정 협의체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전까지 현재 노선계획을 전면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봉산을 관통하는 현재 노선에 대해서는 재검토하되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민관정 협의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 하지만 대책위 주민들은 “시장이 결정해야 할 사안을 협의체에 떠넘기는 것은 책임방기 아니냐”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상호 공동위원장은 “단순히 주민반발이 있으니 ‘전면재검토’를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도로문제에 대한 본인의 정치적 원칙과 철학을 밝히고 거기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껴 시의 입장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병세 공동위원장은 “교통량 분산이 목적이라면 기존도로 확장이나 우회로 마련 등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도로를 새로 짓는 방안으로만 논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임병세 공동대책위원장이 가리킨 방향으로 터널이 계획돼 있다. 이곳으로 도로가 지나갈 경우 고양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고봉누리길이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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