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융조 고양 가와지볍씨박물관 명예관장

고양 가와지볍씨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고양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된 이융조 고양 가와지볍씨박물관 명예관장(충북대 명예교수)이 가와지볍씨와 관련한 소중한 이야기를 담은 글을 기고했다. 이 명예관장이 보내온 자료사진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달 고양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된 이융조 고양 가와지볍씨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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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신문]  나는 지난달 20일 고양시청 컨퍼런스룸에서 고양시의 많은 고위간부들 앞에서 최성 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 5호를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 자리에서 최성 시장은 “국내인으로는 처음 수여하는 자리”라고 밝히며 의의를 높이 강조했다.

나와 고양시의 첫 만남은 1991년 일산 신도시 문화유적 조사단 단장 손보기 교수로부터 조사 참여를 부탁받아 5월 8일 충북대학교 학생들과 허허벌판에 첫발을 내딛으며 이루어졌다. 그 인연이 26년 만에 명예시민증을 수여받기까지 이어져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 이 기회를 빌려 100만이 넘는 고양시민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고양 가와지볍씨의 빛나는 역사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고양 가와지볍씨 연구의 공로자인 고 박태식(1948~2013) 박사는 5020년 된 가와지볍씨가 재배벼임을 밝혀냈다. 나는 그것을 촬영한 사진이 너무도 소중해 다음 해(1994년) 연하장으로 만들었다. 그 연하장을 그 해 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회의에서 만난 일본 센다이 공과대학 고바이시 교수에게 선물했는데, 이것이 일본의 주요 신문인 마이니치 신문에 소개되는 경사가 만들어졌다. 가와지볍씨가 아시아 선사농경 연구에 큰 파문을 던진다고 대서특필한 기사가 마이니치 신문의 9월 17일 1면과 12면에 크게 소개된 것이다. 한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볍씨)이 외국의 주요 신문에 주요 뉴스로 선정된 것은 가와지유적과 볍씨가 처음일 것이다.
 

고양시를 찾아 열강을 하고 있는 고 박태식 박사. <사진제공=이융조>
5020년 재배벼를 증명한 첫 사진(박태식 박사 촬영)으로 제작한 연하장. <사진제공=이융조>
가와지볍씨를 크게 소개한 1994년 9월 17일자 마이니치 신문 1면과 12면. <사진제공=이융조>

 
두 번째, 그 해 박태식 박사는 그가 공부하고 연구했던 세계 벼농사의 중추기관인 국제미작연구소(IRRI, 필리핀 소재)에 가와지볍씨를 전시해 볼 것을 제안했다. 이 계획이 성과를 거둬 94년 ‘3000년 전의 가와지Ⅱ형볍씨’를 IRRI 박물관에 전시하게 됐다. 2000년 제4회 쌀 유전학 국제회의에 참여하며 IRRI 박물관에 가보니 가장 좋은 자리에 벼 13톨이 독립장에 전시돼 있고, '한국의 선사농경'이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설명돼 있었다. 그 당시 박물관 안내자의 설명으로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이 1년에 2만 명 이상 방문하는 이곳에 3000년 된 벼는 유일한 자료라고 설명을 들었을 때, 볍씨를 발굴한 고고학자로서 벅찬 감회에 젖게 됐다. 이처럼 가와지볍씨는 지금도 국제미작연구소를 방문하는 많은 학자들에게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와지유적 발굴과 볍씨를 소개한 IRRI박물관 전시물(2000년). <사진제공=이융조>


세 번째, 나는 95년 8월 중국 강서성 남창시에서 개최된 ‘제2회 농업고고 국제대회’에서 ‘고양 가와지에서 출토된 볍씨는 5천년 전 재배벼’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A4용지 크기의 사진들을 10여 장 만들어 전시해 참가한 많은 학자들에게 제공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 · 캐나다 · 중국 학자들에게 칭송과 깊은 관심을 받았기에 이 또한 고양 시민께 크게 자랑하고 싶다.
 

1995년 중국 강서성 남창시에서 열린 '제2회 농업고고 국제회의'에 소개된 가와지볍씨. <사진제공=이융조>


네 번째, 94년 당시 고양문화원과 고양신문을 경영하고 있던 이은만 원장의 열성으로 가와지볍씨에 대한 첫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는 고양시민들이 이은만 원장에게 감사드려야 할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현재 이 원장은 고양 가와지볍씨 문화보존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막중한 책임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고양신문 이영아 사장으로부터 고양 600주년을 기리는 행사의 일환으로 가와지볍씨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요청받았다. 2013년 4월 킨텍스에서 열린 학술대회에는 고양 시민들에게 가와지볍씨의 의미를 알리고자 94년도에 발표했던 세 사람이 다 참여했다. 나와 고 박태식 박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김주용 박사는 학자들과 고양시민들 앞에서 열띤 토론과 논쟁을 계속했다. 이 내용은 고양신문의 전면에 발표됐고, 그 뒤에도 가와지볍씨 중요성과 의미를 높이기 위해 고양신문 이병우 부장이 단독 취재를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렇게 해 그해 12월에 다시 국제회의가 개최됐고 박물관도 재개관을 하게 됐다.
 

2013년 열린 고양 600년 기념학술대회 개회식. <사진제공=이융조>


다섯 번째, 농업기술센터 권지선 소장(당시)은 박물관의 재개관에 대한 모든 업무처리를 나에게 부탁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 당시 나의 까다로운 요구에도 궂은 낯을 보이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진행해 준 인테리어 회사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2014년 3월 19일 개관식에는 정기영 전 문화재관리국장,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들과 함께 전보삼 (사)한국박물관협회장, 김종규 명예회장 등은 축사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유물인 볍씨를 갖고 개관한 이 박물관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박물관으로 명성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치하와 부탁을 받았다. 이렇게 볍씨를 이름으로 한 박물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기에 그 이름과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014년 고양 가와지볍씨박물관 재개관식. <사진제공=이융조>

여섯 번째, 지난해는 가와지유적과 볍씨를 발굴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고자 농업기술센터 정종현 소장은 고양국제꽃박람회 행사의 일환으로 국제회의와 선사농경 특별전 개최를 건의했고, 제안을 받은 최성 시장이 흔쾌히 수락했다. 박물관에서는 8개 국가에서 온 학자들과 함께 국제회의를 개최했고, 고인류연구소 박충래 소장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농기구 특별전을 개최했다. 개관한 지 2년 만에 이러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가와지볍씨박물관뿐일 것이며, 가와지볍씨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고양시와 농업기술센터의 전폭적인 도움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상과 같이 지난 20년 동안의 단편적인 주요 사실을 고양시민들에게 보고 드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만들어주신 고 손보기 박사님, 고 허문회 교수님, 고 박태식 박사님께 오늘의 명예시민됨을 고하고자 한다. 또한 이 조사를 위해 91년 여름, 102일 동안 함께 했던 당시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생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허허벌판 논바닥 1.8m 밑에서 볍씨를 찾을 수 있었고, 그들의 격려가 있었기에 이 볍씨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으로도 고양 가와지볍씨가 더욱 빛나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보태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가와지볍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 모두의 역사로 생각하고 우리나라와 외국에 널리 자랑해도 좋으리라. 오늘의 영광은 많은 분들의 후원과 격려 덕분임을 알고 다시 한 번 삼가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열린 가와지유적 발굴 25주년 기념 특별전은 박충래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됐다. <사진제공=이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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