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글 내용이야 잘못 읽을 리 없고, 필자 이름을 잘못 보았나싶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지만 그 사람이 맞았다. 깜짝 놀랐다. 젊은 논객으로 필명을 날렸고, 자기보다 윗세대 논객들에 대한 책을 쓴 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까 싶었다. 물론, 나하고 견해가 달랐다. 그 점을 무어라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논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충실히 다는 건 글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근거가 약했고 주장을 달리 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페이스북에 그 글을 걸고 이 친구 왜 이리 됐나 했더니, 댓글이 달렸다. 아마도 오랜 시간 혼자 글 쓰면서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 싶어 과장된 글을 쓰는 모양이라는 내용이었다, 글동네에 얹혀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본지라 그 말을 수긍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쓰기도 하지만, 널리 알려지고 싶어 쓰기도 한다. 앞엣것에서는 진정성을 느끼게 되지만, 뒤엣것에서는 한낱 인정욕구만 보게 된다. 세상요지경인 것은, 진정한 글보다 인정받고 싶은 글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덕에 인기를 얻고 명성을 얻고 문화권력을 틀어쥐는 꼴을 여러 번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익히 예상할 수 있듯,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으면 군자라는 그 말이다. 동양철학은 앞대목이 상당히 중요하다. 자기 철학의 핵심을 앞쪽에 몰아놓아서다. 논어의 첫 선언이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얼마나 기쁘냐는 것은, 공자철학의 고갱이가 공부라는 점을 넌지시 일러주는 셈이다. 그 다음이 먼 곳에서 찾아온 벗을 만난 기쁨이고, 이어서 바로 성나지 않음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학습, 붕우, 불온이야말로 공자처럼 살려는 사람이라면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황금률이다.

젊을 적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성날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는 게 무에 잘못인가 싶기도 했다. 학벌, 지연, 인연으로 똘똘 뭉친 한국사회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거꾸로 요란하기만 한 빈수레인 데도 기득의 울타리에서 큰소리치는 사람도 자주 만났다. 그러니, 공자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올 리도 없다. 알아달라고 난리치는 것이야 나무랄 수 있으나, 알아주지 않는 세태에 화낼 수는 있다고 보았다. 하긴, 논어를 공부하다보면 나온 입이 쑥 들어가게 하는 구절이 있어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한다. “군자는 자기가 능력 없음을 걱정하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낭중지추라 하지 않았는가. 갈고 닦으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아직 알아주지 않으면 덜 갈고 닦은 셈이다. 다시, 더 공부해야 한다. 이 정도만 해도 성찰의 실마리는 충분하건만, 공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여라.” 이 말을 들으면, 원망과 분노로 바짝 섰던 고개를 절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옛사람이 성(誠)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누가 강요해 가는 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외롭고 춥고 배고프다. 그만 걸음을 멈추고 그곳에 터를 잡고 싶다. 그러나 아무나 멈출 수는 없다. 그 길을 한결같이 간만큼 얻은 앎이 있어야 한다. 아직 없다면, 다시 가야 한다. 바로 이때 필요한 덕목이 성일 수밖에 없다.

중용에 보면 “그러므로 지극히 성실함은 쉼이 없다. 쉬지 않으니 오래가고, 오래가니 효험이 있다. 효험이 있으니 유원(悠遠)하고, 유원하니 넓고 두터워진다. 넓고 두터우니 높고 밝아진다”라 했다.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가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 말하리라. 그러다 이루지도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으면 어찌 하냐고. 문제될 리 없다. 부와 명예와 권력만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참뜻을 찾고 이를 이루려고 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남이 인정해 주어지는 자리(位)를 탐할 일이 아니라 독립적 사유와 실천의 자리에 선(立) 사람이 되려해야 할 뿐이다. 사실, 그 논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넌지시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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