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고양신문] 한때 노동운동에서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일’이란 뭔가? 아마도 임금노동, 즉 돈 받고 일하는 노동만을 규정한 것이다. 그러면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돈 받을 자격이 없는가? 돈이 되는 노동(임금노동)만을 일(Labour)이라고 보고 다른 일(Work)은 일이 아닌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정당한 것인가?

당연히 정당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고 무슨 일이든 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불노동이 10분의 1이라면 그림자노동으로 표현되는 무불노동은 10분의 9를 차지하며 우리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갈수록 지불노동의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유럽형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노동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정의롭지 못한 노동착취형 비정규직 시스템은 개선되어 선별적으로 정규직화 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하는 것이 바른 정책 방향일까. 그럴 수 없다. 기업은 기술개발을 높여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고용은 늘지 않는다. 결국 사회는 돈을 많이 버는데 일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사회적으로 버는 돈을 모두에게 그냥 나눠주면 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이 방법 밖에 없다. 그래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이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의미 있는 일(Work)을 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그들 모두 마땅히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지급되는 돈이다.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9대 대통령보궐선거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주창한 청년배당 때문이었다.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19~24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년배당은 올해 이미 시행되고 있다. 내년에는 만 16~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배당으로까지 확대한다고 결정했다. 선거당시 정의당 또한 기본소득을 기치로 내걸 정도로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이 모아졌다. 

이미 세계는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복지정책의 가장 이상적인 제도로 기본소득에 열광하며 실험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을 하고 있거나 노동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에서 똑같이 보편적, 무조건적,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이에게 무조건 지급하기 때문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리는 데 들어가는 행정력이 대폭 줄어든다. 또한 개별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가족을 합치면 꽤 많은 액수가 된다. 정기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미래설계가 가능해 미래불안요소가 없어진다.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이 줄어들어 공동체성도 높아지고 출산율도 늘게 되고, 노후 불안요소도 없어져 품위 있는 성숙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알래스카는 석유수입으로 1982년 이후 매년 2000달러를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 해왔고,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지만, 캐나다 온타리오주. 네델란드,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코틀랜드, 나미비아, 브라질 등에서 실험을 하고 있거나 준비 중에 있는 등 관심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핀란드는 올해부터 매월 560유로(약 70만원)을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지급하기 시작한 최초의 기본소득 시행국가가 됐다.


농민에게 먼저 시행하자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기본소득은 현재 모든 복지예산과 낭비요소와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 집중하면 전 국민에게 매월 30만~60만원 정도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전 국민에게 한꺼번에 지급하기 전에 먼저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길 제안한다. 물론 여기에 청년, 장애자, 노인(노인들은 이미 지급하고 있다)이 같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산업과 달리 농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고 국가의 식량주권을 담당한다. 현재 농민 인구 250만 명은 농수산물개방 이후 매월 평균 80만원도 안 되는 수익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직불금이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이래선 농업이 파탄 나고 농민이 망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따라서 식량주권과 국민생명권 등 공익적 기능을 담당하는 농촌에 우선 기본소득을 지급하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농촌지역에 귀농인들을 유입하는 효과도 있어 지역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고, 이렇게 줄어든 도시 인구를 토대로 새롭게 도시재생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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