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시민의눈 3기 출범
시민참여 정치 문화 새바람 예고

 

[고양신문] 의외였다. 대개 시민활동가들의 모임이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진행되는데 반해 고양 시민의눈 운영위원 모임은 차를 마시며 진행됐다. 김미경 대접주(시민의눈광역조직의 리더)가 직접 팽주(차를 내리고 분배하는 사람) 역할을 맡아 빈 찻잔에 연거푸 향기로운 차를 부어준다. 차가운 날씨 탓에 움츠러든 몸이 훈훈해진다. 연이은 취재 일정의 숨가쁨도 잠시 느긋하게 풀어놓는다.
 

고양 시민의눈 운영위원들이 따뜻한 차를 나누며 느긋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정원 부정개입에 분노, 자발적 선거 감시 단체 만들어

‘시민의눈’은 출범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새내기 시민단체지만 지난해 치러진 대선 과정에서 남다른 조직력과 열정으로 선거 감시 활동을 활발히 펼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발은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 등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기관의 부정 선거 개입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였다. 이를 목도한 시민들이 “우리 손으로 선거 부정을 감시하자”는 취지로 자발적으로 모여 2016년 4월 결성한 초정파 시민운동단체가 바로 시민의눈이다.

1기 활동은 20대 총선을 전후로 일부 투표장을 중심으로 사전투표함 이송과 관리, 투·개표 참관과 계수, 선거 종사자와 선관위 직원의 공정성 등 투표 전 과정을 감시했다. 2기에 해당하는 지난해 치러진 19대 대선 과정에서는 전국 모든 투표소에 투입돼 무려 5만3000여 명의 회원들이 보다 치밀한 공정선거 감시 활동을 펼쳤다. 시민의눈 관계자는 “촛불혁명 이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첫 번째 전국행동이었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활동을 자평한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별로 꾸려진 전국 243개 조직에서 공동행동을 경험한 회원들이 자연스레 지역중심의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투·개표 감시활동이라는 최초의 목적을 뛰어넘어 상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시민 주권을 지켜내는 영역으로 활동 성격을 전환하자는 요구가 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민의눈은 ‘감시를 넘어 참여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해 연말 제3기 출범을 선언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가두 홍보를 하며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모습.


고양 시민의눈, 1300명 단일조직 정비

고양 시민의눈 역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공정선거 감시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동안 덕양구, 일산동구, 일산서구로 각각 활동하던 지역조직을 지난 연말 총회를 통해 단일 조직으로 정비했다. 현재 회원 수는 1300여 명이다. 고양 시민의눈 대접주를 맡고 있는 김미경씨는 “지난 19대 대선을 끝내고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회원들의 열망이 강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시민의눈 회원들은 대개의 시민들이 나름 완벽한 시스템으로 치러진다고 믿고 있는 선거가 과정 과정마다 허점과 부실 투성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특히 거소투표나 사전투표 과정에서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선관위 직원이나 정당참관인들이 표 관리를 소홀히 하는 점을 허다하게 지켜봐야 했다. 결국 시민의눈 회원들이 조를 짜 선관위 마당에 천막을 치고 24시간 투표함의 동선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내야 했다.
 

고양 시민의눈 회원들이 사전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밤을 지새우고 있다.
19대 대선 개표에 참관한 회원들이 휴식시간에 함께 간식을 나누고 있다.


“회원들이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헌신했어요. 덕분에 투표가 끝나고 나자 회원들 사이에 전우애에 버금가는 끈끈함이 형성됐지요.”
김미경 대접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참석자들이 당시의 활동을 회상하며 각자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어간다. 투표라는 ‘절차적 제도’에 이토록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한 표의 가치는 고스란히 한 시민의 가치이기에 참된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지요.”
 

덕양구 시민의눈이 진행한 이명박 구속촉구 피켓챌린지 모습. 고양에서 처음 시작된 피켓챌린지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민의 뜻 전달하는 적극적 선거 참여운동 펼칠 것”

초정파 중도노선을 표방하지만, 촛불광장의 열망이 시민의눈 조직 확대의 바탕이 된 이상 특정 정치성향에 기울지는 않을까?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고양 시민의눈 대총무를 맡고 있는 이찬경씨는 “투개표 공정성 문제는 진보와 보수, 정파 유무를 떠난 문제”라며 “보수 성향의 회원도 환영한다.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보다 폭넓은 정치적 견해와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3기 활동의 초점이 집중될 올해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시민의눈은 투표소 개표 법안 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법 제정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개헌시민평의회 구축, 완전시민경선제 법제화 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등을 폭넓게 전개할 계획이다.

나아가 단순한 선거 제도와 메뉴얼 관리를 넘어 누가 주권자의 진정한 대리인인지를 미리 검증하고 조명하는 영역으로 역할을 확장할 것을 예고했다.
김미경 대접주는 “지역 곳곳의 밑바닥 목소리를 모아 선거 출마자들에게 전달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적극적 선거 참여운동도 펼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6. 시민의눈 3기 출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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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달라도 지향점은 하나, “내 삶과 밀착된 정치!”

■ 나는 이렇게 ‘시민의눈’에 참여했다

고양 시민의눈 운영위원들은 본인들의 위치를 “보다 많은 이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시간과 공을 조금 더 들이는 심부름꾼”이라고 규정했다. 활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하나였다. 크고 먼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정치’를 시민들의 일상과 밀착되는 높이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김미경 대접주는 해외에서 10년간 거주하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자 모인 촛불광장의 모습을 TV로 보고 “나도 저 자리에 가 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10년 만에 귀국해 무작정 광화문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시민의눈을 알게 돼 지금은 으뜸 일꾼이 됐다. 올해 새로 장만할 고양 시민의눈 활동공간을 누구나 찾아와 향 깊은 차를 나누며 마음을 풀어놓는 ‘소통의 장’으로 운영하고픈 바람을 갖고 있다.

투개표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구심이 들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민의눈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찬경 대총무는 “최근에는 선거제도 자체를 보다 공정하게 만드는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익 회원은 선거와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러 선관위를 찾았다가 밤을 새워 사전투표함을 지키는 시민의눈 활동가들과 만났다. 민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의눈이 든든한 ‘공증자’가 돼 주었다고 한다. 그는 “선거 이후에도 지속적인 참여의 길을 시민의눈을 통해 찾아보고 싶다”고 밝혔다.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인 최수연씨는 “이런 저런 시민활동에 적극 참여해보고, 정당에도 가입했지만 한 시민의 힘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의눈을 만난 후 사심 없이 일하는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며, 다시 기운을 내 시민 주권을 실현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국가의 행정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오랫동안 절감했다는 탁경이 운영위원은 “촛불광장의 힘으로 정권을 바꿨지만, 일상이 바뀌기까지는 아직 요원해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 스스로 자신을 ‘표밭’이 아닌,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세우려면 힘을 모으고 내 삶에서 가까운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사진 왼쪽부터) 고양 시민의눈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김태익, 이찬경, 김미경, 탁경이, 최수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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