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고광석 대명한의원 원장

[고양신문] 친구들이 하나 둘 퇴직을 한다. 30년 이상 한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인데 갑자기 직장을 나오게 되니 마음 둘 곳이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바삐 사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에 할 일이 없으니 스스로 위축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우울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새벽부터 서울에 다녀 올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이른 아침 두툼한 옷을 껴입은 남자들이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도대체 저이들은 언제 일어나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벌써 서울행 지하철에 몸을 실은 것일까 내심 존경심마저 들었다. 아침 시간임에도 반짝이는 기운들 보다는 피곤함이 묻어난다. 다행히 자리라도 잡은 이들은 그저 눈을 감고 부족한 잠을 채우는게 제격이지 싶었다.

다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생활 전선으로 나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짠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 생각도 난다. 젊을 때는 이런 날이 올 거란 생각도 못하고 일에 파묻혀 살았을 텐데 한창 나이에 이제 집에 가서 쉬라는 통보를 받으면 아찔할 노릇이리라. 게다가 만약 아직 뒷바라지 해야 할 아이들이 있다면 막막함이 오죽하겠나 싶다.

우리 세대 대부분은 부모님 덕으로 대학교육을 받고 나름 번듯한 곳에 취업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산 사람들이다.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쉬움에 자식들에게는 무한 투자를 한 세대이기도 하다. 아버지처럼 그렇게 어렵게 살지 말고 너 원하는 삶을 살라고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려는 시점에 그 자식들은 부모를 뛰어넘을 수 없는 첫 세대가 되었단다. 너무나 짧았던 풍요였다.

일본에서는 공부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바로 자식들을 하류인생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근시안이 낳은 비극이다. 미래가 밝지 않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아프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란 희망이 있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우리보다 훨씬 행복했을 것이란 억지도 부려본다. 그나마 밥벌이라도 하면서 사회적 관계(지위)를 이어갈 때는 자식들에게 큰소리도 칠 수 있고 당당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면 아무도 돌아봐 주는 이 없는 작고 초라한 중늙은이가 될 뿐이다. 어느 아버지라고 자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너무나 냉혹하다. 대단한 권세를 누리던 이도 가차 없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경제력이다.

요즘 눈물겨운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본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재산을 차명으로 돌리고 여기 저기 숨기고, 저지를 수 있는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자식 입장에서야 그 아비만하게 고마운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고 진실은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칼바람이 부는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가는 그 아비들의 심정을 당신은 십에 일이라도 알 수 있는지. 정당하게 살며 자식에게 떳떳한, 그러나 가난한 아버지들을 응원하고 싶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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