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 변호사 <기고문>

신현호 변호사

[고양신문] 작년 10월 미국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충격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상륙하자 가히 쓰나미가 되어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행 폭로는 곧 문화·예술계를 덮치더니 어느덧 여의도까지 삼켜버렸다. 그동안 폭로의 규모나 모습으로 보아 우리 사회 곳곳에 더 많은 피해자가 존재할 것이기에 미투운동이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예상하는 사람이 없다. 

연이은 폭로에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지위를 내려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박탈한 것이 현재까지 미투운동의 효과다. 누군가 총을 들고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면 그들로부터 총을 빼앗는 것이 먼저다. 다음은 그를 구치소에 가두고 다시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총기를 규제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사회적 지위라는 총과 칼로 피해자들을 위협했다. 미투운동은 그들로부터 총을 빼앗았고 또 빼앗아 가고 있다.

미투운동을 보면서 필자는 변호사로서 가해자들의 형사처벌 부분이 주된 관심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아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루빨리 가해자가 밝혀지고 그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률가의 시각에서 볼 때 우려되는 대목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모두가 처벌받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잘못된 진술로 인해  정말 성폭력을 가한 것인지 가해자가 진실공방으로 변질시키거나 심지어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성범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이기 때문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적다는 특수성이 있다. 피해자의 증언이 유죄를 입증할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법관은 피해자의 증언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따라 피고인의 유죄여부를 결정한다. 피해자들은 법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말과 글로 폭로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아마 격한 감정에 제대로 진술하지 못한 실수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이 어떻게 진술해야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가해자를 가둘 수 있을까?

법원이 피해자의 증언을 믿지 못해 무죄 판결을 할 경우 그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은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으며, 경험칙(상식)에 반하고, 구체적이지 못하여 믿기 어렵다”라는 문구를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가해자를 법망 안에 가두려면 피해자는 모순되지 않고 일관되게 진술해야 하며, 상황을 이해할만하게 자세히 진술해야 한다. 

올해 2월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 온 폭로 글 중 “저랑 공연하던 7~8년 전 일 기억나요?”, “이제 갓 미성년자를 벗어난 여배우가 스트레칭 하는데다 ‘XX하기 좋은 나이다’라고 하셨죠?”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이에 대해 대상 배우는 “7~8년 전에 이미 연극판을 나와 영화 ‘황해’를 찍고 있었다”며 위 폭로 글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양쪽 주장이 모두 진술된 경우 법관은 누구의 진술을 신뢰할까? 대상 배우가 7~8년 전 연극판을 떠난 사실이 입증되면 당연히 대상배우의 진술을 신뢰할 것이다.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만약 피해자가 위 배우로부터 정말 성희롱을 당했고 단순히 그 시기만 헷갈렸던 것이면 어떨까. 피해자가 피해 시기만 정정하면 법관이 이를 믿어줄까? 아쉽게도 이러한 경우 법관은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고 보거나 성범죄 피해자가 그 피해시기를 혼동했다는 것은 ‘사람은 대개 큰 충격을 입은 날을 잊지 않는다’는 상식에 반한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정치인에 대한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여비서는 성폭행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덧붙였다. “스위스에서 ‘아니라고, 모르겠다고’ 그랬는데”, “저는 일할 때 거절하거나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저로서 그때 머뭇거리고 어렵다고 했던 것은 저한테는 최대한의 방어고 거절이다”라는 진술이다. 

보기에 따라 애매할 수 있는 이 진술에 대해 위 정치인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페이스북을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 과연 법정에서 그는 어떠한 주장을 할까. 법정에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이라면 ‘변호인이 법관에게 화간여부 즉 합의에 의한 성관계여부를 어떻게 입증할까’가 주된 관심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조인들의 관심은 ‘변호인이 법관에게 강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어떻게 심어줄까’이다. 즉, 변호인은 성관계에 대한 합의까지 입증할 필요가 없다. 성관계에서 강제성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까지만 입증해도 된다. 우리 헌법은 무죄추정원칙을 형사소송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노련한 변호인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애매한 진술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에게 ‘거절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읽기에 따라 ‘정치인 입장에서는 강제로 성관계를 갖는다고 인식하지 못했겠구나’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서의 위와 같은 진술은 사족이라 하겠다. 바로 그 진술로 말미암아 법정에서는 다툼이 예상된다.  

피해자들이 이미 한 진술은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 또 용기를 낼 피해자들은 위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피해사실을 진술함에 있어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법적으로도 충분히 보호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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