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필 우선협상 3순위로 밀려

고양문화재단, 교향악단 상주단체 공모
심사비 5천만원 쏟아 외부단체 위탁
고양시 문화예술단체 큰 반발
고양시 "공정한 심사 거쳐 선정했다"

 

스스로를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밝힌 이성균씨가 고양시 교향악단 상주단체 공모 결과에 반발하며 지난 6일부터 시청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고양신문] 10억원 예산이 지원되는 고양시교향악단에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주단체가 우선협상으로 선정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위상 정립과 공연예술 활성화’를 표방하며 진행한 고양시 교향악단 상주단체 공모에서 기존 상주단체로 활동했던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고양필)가 우선협상대상 3순위로 발표됐다. 지역 시민단체와 문화예술 후원자들은 “심사 과정에서 지역 공연단체가 역차별을 당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은 지난 5일 “시 교향악단 상주단체 공모 심사결과 우선협상 1순위 대상에 뉴서울 오케스트라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W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고양필은 각각 2순위와 3순위로 발표됐다. 교향악단 상주단체 예산은 지난해까지 1억1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올해 대폭 증액된 10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선정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는 상황이었다.

우선협상 결과가 발표되자 예술단체 후원자와 시민단체 대표 등은 지난 6일부터 시청 정문에서 시위를 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1인 시위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이성균(고양필 후원회원)씨는 “고양필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고양시의 클래식 공연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20여 년간 애써왔는데, 정작 거액의 예산이 책정되자 고양시와 아무 연고가 없는 타 지역 오케스트라를 상주단체로 선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시의 문화예술 육성에 대한 철학 부재를 성토하려고 시위에 나섰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고양시민포럼 대표인 하성용 신한대 교수 역시 1인 시위 대열에 동참하며 “심사위원에 고양시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면서 “문화예술계가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이 서울의 연주단체에 더 많은 점수를 줬을 것은 뻔한 일”이라고 심사위원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는 곧바로 ‘선정 과정의 공정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며 대응에 나섰다. 이현옥 교육문화국장은 “고양시 교향악단 선정 목적은 지역 예술단체 지원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절차상 신중을 기했으며, 오히려 가산점 배점, 동점시 기존 상주단체 우선 등의 원칙을 넣어 지역단체를 위한 배려를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심사에 공정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심사진행비와 외주용역비를 합쳐 5000만원이라는 적잖은 예산을 썼다. 심사 전 과정은 ‘커리어넷’이라는 공연예술분야 인력수급 전문단체에 외주를 맡긴 것. 심사 실무를 진행한 문화재단 관계자는 “1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수의계약을 통해 선정할 순 없지 않은가”라며 “최고의 공연단체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공개공모를 실시했고, 1차 PPT심사와 2차 실연 심사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시의 면피성 대응이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며 반박했다. 하성용 교수는 “심사위원 구성에 객관적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시에서 어떤 이들을 접촉해 심사위원에 참여시켰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문화예술 상주단체 전국공모를 처음 실시하는 중요한 심사에서 심사위원 선정 평가위원회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는 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어 하 교수는 “현재 심사위원 명단, 실연평가 녹화동영상 등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시가 형식적 형평성에 집중한 나머지 지역의 문화예술 육성이라는 큰 그림을 놓쳤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이성균씨는 “상주단체 교향악단을 공모하기로 한 근본적인 이유가 단순히 시민들에게 양질의 문화공연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10억원에 이르는 운영예산으로 국내외 최정상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을 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교향악단 상주단체는 장기적으로 고양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명실상부하게 고양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단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가운데 1차 우선협상 대상자로 발표된 뉴서울 오케스트라가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고양시 상주단체 선정’을 기정사실화하며 수십 명 규모의 신입단원 모집공고를 낸 사실이 밝혀져 향후 활동에 대한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하 교수는 “시 상주단체 지원예산으로 신입단원으로 구성된 2진 오케스트라를 별도로 운영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면서 “그렇다면 실연심사 당일 무대에 선 단원들의 신분도 명백히 검증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9년 창단된 고양필은 그동안 전문오케스트라로 활동하며 고양시를 대표하는 공연단체로의 위상을 쌓아왔다. 고양필 안현성 상임지휘자는 “20여 년 동안 43회의 정기연주회를 포함해 200회가 넘는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며 시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일궈왔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무척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안 지휘자의 말대로 고양시에 문화예술 향유계층을 발굴하며 제대로 된 위상의 상주단체 교향악단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시킨 장본인이 바로 고양필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고양필은 2016년 3000만원, 2017년 1억1000만원의 적은 예산을 지원받으며 ‘상주단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 문화예술도시를 표방하는 인구 100만의 도시에 어울리는 ‘시립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자 시는 한 해 최소 50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시립오케스라 창단은 당장 무리라는 판단으로 10억원의 예산을 세워 ‘시립교향악단을 준비하는 중간단계'로서의 위상을 지니는 상주단체 교향악단 창단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이런 규모의 상주단체 선정 선례가 없어 나름대로 절차상 시비가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의 탄생 배경과 목적을 고려한다면 시는 이번 심사를 통해 단순한 형식상의 형평성을 뛰어넘는, 보다 신중하고 장기적인 문화예술 육성 철학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부서인 문화예술과와 예산집행기관인 고양문화재단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무엇보다 “심사를 외부 전문단체에서 진행했다”는 명분을 반복하고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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