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에둘러 돌아가지 않겠다. 고양시 인권증진위원회는 지금 파행 중이다. 시작은 시장이 발의한 고양시 인권조례 개정 절차를 3월 30일 일방 취소하면서였다. 고양시는 인권센터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조례 개정에 대한 시민의견 수렴기간 중 이같은 결정을 인권위원들에게 일방 통보했다. 그 후의 상황은 기가 막힌다. 인권위원들은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조례 개정에 ‘반대 의견이 많다’며 이를 중단한 시장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청한 면담에 대해 시장은 오늘까지도 답변이 없다. 140여 건의 반대 의견을 이유로 100만 시민이 함께 사는 고양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가당찮은 일은 또 그 다음이다. 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은 이후 인권위원 중 한 명인 김경희 시의원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공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고양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경희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고 고양시의회에 김 의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일부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충 이렇다. 그들이 고양시의회 의장에게 보낸 성명서 중 <인권조례 전부 개정안 철회 및 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를 보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부도덕한 성윤리를 포함하고 있어 개정안에 적극 반대한다’는 것이다. 

사실과 맞지도 않지만 이런 논리가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자. 조선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다는 말은 목이 잘리는 반역죄에 해당되었다. 양반과 상놈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며 ‘태어날 때부터 가진 신분'을 이유로 차별했다. 그뿐인가. 예수를 믿는다며 목을 자르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야만이 옳은가! 그래서 기억나는 사연이 있다.

내가 처음 동성애자를 만난 때는 1994년의 일이었다. 그때 인권단체 회의를 갔는데 동성애자 단체 활동가가 참석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신기했다. 그러면서 두려웠다. 동성애자는 우리와 다른 존재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 때는 쉬는 시간이었다. 당시 흡연자였던 나는 복도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문제의’ 동성애자가 나에게 다가와 담뱃불을 빌렸다. 그렇게 해서 마주하게 된 그에게 나는 정말로 궁금했던 한마디를 건넸다.

“저기요.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불쾌하시면 답변 안하셔도 됩니다. 실례지만 언제부터 동성애자가 되셨어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솔직히 후회했다. 아무래도 너무 한심한 질문 같았다. 동성애자인 저 사람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뜻밖이었다. 잠시 후 그가 웃으며 다시 나에게 물었다.

“그럼 선생님. 저도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럼 선생님은 언제부터 이성애자가 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도 묻고 싶다. 여러분은 언제부터 이성애자가 되셨냐고? 그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도 ‘언제부터가 아니’라는 것.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적정체성이었다고 했다.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처럼 결정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이미 수많은 논의와 논쟁을 통해 만들어진 보편적 인권의 가치, 즉 나는 지지하지 않지만 ‘그것을 이유로 누군가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양시 인권조례는 다만 그것을 담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이유로 차별한다면 그 다음엔 여성이라서 차별하고 장애인이라서 차별하고, 김씨라서, 박씨라서, 최씨라서 차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것이 말이 안 된다면 ‘동성애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 역시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독재자 히틀러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학살한 것처럼. 히틀러만 야만이고 지금 이것은 야만이 아닌가.

시에 의해 일방 중단된 고양시 인권조례 개정을 개탄한다. 이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고양시가 아니라 ‘잡초보다 못한’ 인권도시로 전락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인권조례 개정 절차를 즉각 재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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