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 빛 시 론>

고광석 대명한의원 원장

[고양신문] 고양시민으로 산 지 벌써 25년이 됐다. 서울서 학교를 마치고 양평에서 군 생활을 한 후 바로 고양시로 왔으니 산 세월의 절반 이상을 고양시민으로 산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사회의 여러 일에 참여하게 됐다. 발벗고 앞장서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뒷짐 지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올해는 어쩌다 보니 인권과 평화에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지역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좋은 신부님도 만났고 또 사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젊은이들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할 급선무이지만 그 문제를 넘어서면 언제나 인권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 지역에 살면서 알게 된 양민 학살, 이와 관련한 유족들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문제뿐이 아니다. 아이들의 인권이 또 새로운 문제다. 그중에서도 다문화 가정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들에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 보호는커녕 의식주 문제조차 해결해주지 않는 부모 아래서 고통을 받다 삶을 저버리기도 한다니 어른으로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아이의 삶조차 돌보지 못하는 어른이 무슨 인권과 평화를 말할 수 있을지, 요즘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이자 숙제다.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일하는 분의 얘길 빌자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이야기 할 상대가 없어 양호실을 찾는다고 한다. 오죽해야 그럴까싶어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학교는 몇 몇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니 그 아이를 만족시킬 정도가 못 된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학교에서나마 채우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물겨운 노력이 애처롭다.

남북이 만나 포옹하고 통일을 얘기하는 마당이다. 그런데 통일비용을 얘기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온 그이의 절박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얼마나 압박을 받았으면 적진(?)을 넘었을 것인가. 나이 든 어른에게 기대 듯 푸근하고 편안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그간에 오해했던 부분을 풀었으리라 생각한다.

예로부터 대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들은 편견 없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핏줄인 아이들을, 그리고 북녘의 동포를 배척하는 소갈머리 없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자님은 인자(仁者)는 인야(人也)라 하셨다. 어진 사람이 인간이란 말씀이다. 어진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노자님도 대제(大制)는 불할(不割)이라 하셨다. 큰 마름질은 나누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것과 저것을 가르지 않고 품는다는 말씀이다. 이제 우리도 좀 더 크게 품을 시기가 된 듯하다. 그렇게 할 역량을 갖추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린 사람, 외로운 사람 그리고 배고픈 사람들을 좀 더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세상이 바뀌니 판문점이 가까운 고양시에 사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드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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