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수남 소설가, 일산문학학교 대표

[고양신문]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들이 만나는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정말 오랜만에 참정치란 과연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를 통감하면서 종일 가슴 벅찬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날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의 낮은 콘크리트 군사분계선을 남북의 두 정상이 아주 쉽게 넘나든 것으로 시작해 희망이 가득 담긴 ‘판문점 선언’을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양 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은 온 세계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요약하자면 지난 65년 동안 줄곧 우리를 구속하였던 휴전이라는 족쇄를 끊고, 이 땅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린 것은 물론, 헤어져 살았지만 남북의 민족이 ‘하나’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는 그 ‘하나’의 민족이 평화공존과 공동 번영을 위해 서로 힘쓰자는 것 등이었다. 이는 봄을 맞은 우리에게 정말 통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선언 이후 겨우 열흘 남짓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남북이 팔을 걷어붙이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선물을 현실로 가시화시켜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난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선언이 항구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 비준동의가 꼭 필요하다는 점과 종전을 위해서는 휴전협정 당사국들이 반드시 서명해 줘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손을 맞잡은 남북의 정상이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아니 되겠다는 데 공감하고 합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종전이란 곧 통일을 향해 가는 디딤돌이며 이는 우리 모두의 염원인 분단종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을 환영한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와 이해의 농도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세계 각국이 환영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일방적으로 환영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고집하고 있는 비핵화에 따른 방법 등은 아직 많은 문제점을 안는 게 사실이다. 북이 이미 능동적으로 풍계리의 핵실험 갱도를 철거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미국은 매우 강력하게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폐기되어야 하며, 지체 없이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 즉 PVID를 공개적적으로 꺼내놓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트럼프의 강압적인 주장은 우리의 평화공존보다 자국의 안보를 우선시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근거를 지난 정권에 빗대어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비핵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속았다고 아들이 또 속일 거라는 발상은 분명 비논리적 비약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또 어찌 보면 우리가 이미 겪었던 60년대의 연좌제와도 닮은 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미국은 그와 같은 발상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 회담이 잘 성사되어 북미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국교가 이루어지고 난 뒤에 올 우리의 국면이다. 물론 이에는 많은 논의와 중의가 필요하겠지만, 한반도의 비핵화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한미연합훈련과 주한미군의 거취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또 공격이 아니라 수비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국내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 사드 등 미국 핵전략자산도 철거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너무 앞선 생각일지는 몰라도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서라면 이제 그것들은 자위의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것도 재고해봐야 할 일이다.

아무튼 지금 한반도의 시계는 통일로 향해 가고 있는 게 확실하다. 혹자는 아직 섣불리 판단할 때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이번 양 정상을 통해 본 현장은 그 도도한 흐름을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4월 27일은 분명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더더욱 분명해졌다. 너나없이 스스로 주체의식을 갖추고 ‘판문점 선언’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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