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대사가 프리드리히 대표로부터 청원서를 전달받고 있다.

<고양의 이웃이었던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가 SNS를 활용해 흥미로운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고양신문] 오늘 오후(5월 15일)에 대사관 주변에서 항의집회가 열린다. 관할 경찰서에서도 며칠 전 집회에 관해 알려왔다. 감옥에 있는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하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며,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담은 집회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독일 여러 시민단체가 주동이 되어 열리는 행사다. 행사시간인 오후 4시에는 베를린 자유대(FU) 특강이 예정돼 있어서 관련 인사들의 면담 요청을 오전 시간으로 조정하여 만났다. 모임 대표인 Rudi Friedrich씨가 내게 청원서를 건넸다.

대사로 부임한 후 한국관련 항의편지(주로 개 식용에 관한 ㅠㅜ)는 더러 받아봤지만 대사관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항의집회는 처음이다.

대표단은 지금 현재도 한국에는 300명가량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18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있다고 하면서 양심, 또는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게 어찌 범죄가 되냐고 항의한다.

사실 이 문제는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2012년 기준,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 723명 중 669명이 한국에 있다. 지난 1950년부터 2016년 말까지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약 1만8800명에 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다. 즉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군대 대신 다른 곳에서 복무하게 해주는 게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바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둘러싸고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돼 왔다. “분단 상황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다 군대를 빼 주면 누가 군대에 가겠나?”라는, 이른바 병역기피 수단으로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반론. 그러면 현역복무 기간보다 훨씬 더 길게 복무기간을 잡고 사회복지시설 등에 투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찬성론이 대립해 왔다.

이러는 사이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기구와 단체는 한국정부에 끊임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새 정부 10대 인권과제의 세부과제에 이 문제를 포함시켰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여러 번 다루어졌다.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전해철, 이철희, 박주민 의원 등이 각각 대표발의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올라와 있다.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59개 국가 중 20개 국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국제적 추세를 감안해서라도 빨리 우리나라에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좋겠다.

다행히 여론도 변화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16년 국민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비율은 2005년 10,2%, 2011년 33.3%, 2016년 46.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6년 7월,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80.5%가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관을 항의방문한 대표단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해 주니 잘 몰랐던 부분도 있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모쪼록 오후에 열리는 항의집회가 ‘김 샌’ 집회가 되지는 않기를….

정범구 주독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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