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고양시장 당선인 인터뷰

[고양신문] 고양갑 최초 재선 도의원, 도의원 출신 최초 지역위원장, 100여 건의 조례를 만든 자치전문가. 민선 7기 고양시장이 된 이재준 당선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집요할 정도의 꼼꼼함. 한편으로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시인이기도 한 당선인의 면모는 그의 정치스토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소년농부에서 민주화투사로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재준 당선인은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홀로 참외, 수박 등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했다. 어머니 농사일을 도우며 어린시절을 보낼 동안 이 당선인은 서정적 감수성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이재준 당선인이 대학에 입학한 79년은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가 서슬 퍼렇게 남아있던 시기였다. 이 당선인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당시 서클소개를 하던 선배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독재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과학 서클에 들어간 그는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사회의 부조리, 불평등, 아픔 등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더 좋은 사회를 꿈꾸기 위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이재준 당선인. 그는 “84년 당시 시국집회에서 아무도 잡지 않던 마이크를 먼저 잡은 게 계기가 되어 1년 동안 수십 번의 집회 때마다 시위를 주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듬해 전두환 정권의 유화조치로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총학생회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이재준 당선인은 “당시 학생회장을 하려면 학점이 3.0을 넘겨야 했는데 같이 활동했던 사람 중에 저밖에 없더라”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울산에 내려가 공장 일을 하면서 몇 년간 평화롭게 지냈다. 하지만 88년 당시 한 후배가 노동운동을 하던 중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내 서울로 상경했다. 후배를 추모하기 위해 장학회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즈음 이재준 당선인도 공장 일을 접고 상경해 개인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시에 자리잡은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후배 이름을 따서 만든 김윤기 장학회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했던 재능교육 농성현장과 쌍용차 대한문 농성현장을 찾아 200만원씩 기부하는 등 최근까지 운영해왔다 

노무현과의 만남, 정치에 눈 떠
사업으로 한창 승승장구했던 이재준 당선인은 96년 운명 같은 만남을 하게 된다. 당시 종로선거에 출마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를 돕게 된 것. 이후 2000년 부산선거에서도 비서로 활동하며 정치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된 그는 이후 2002년 대선 당시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덕양갑 회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초대회장을 하면서 지역 시민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이 시기쯤이었다. 

2006년 경기도의원으로 처음 출마했던 이재준 당선인은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당시 화정지역 최대 현안이었던 백신도로 반대투쟁에 공동대표를 맡게 되면서 다시 지역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유일한 전과기록이 바로 이 시기 집회를 주도하면서 받은 벌금형이었다. 

“구치소에 있을 당시 주민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항의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의 힘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 이 당선인. 이후 그는 고양시민회 정책위원장을 맡으며 고양시 각종 이슈에 대해 개입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다뤘던 현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곽순환고속도로 통행료 문제였다. 2007년 도로개통 후 6개월간 무려 49억7000만원의 수익이 발생한 데 대해 이재준 당선인은 법정다툼까지 벌여가며 통행료 900원 인하를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 통행료 인하운동에 참여했던 이재준 당선인의 모습

100개 조례 제정 자치전문가로
2010년 고양무지개연대 활동에 힘입어 경기도의회 입성에 성공한 후 8년의 의정활동 동안 대중교통으로 수원을 오가며 환경, 교통, 역사, 인권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100여 건의 조례를 발의했다. 전국 최초 경제민주화 조례 제정, 전자파 취약계층 보호 조례 제정, 국회에서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이끌어 내 경기도에 연간 800억원의 세수입을 증가시키기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아울러 도의회 차원에서 대선 개입 관련 박근혜 대통령 사과 건의안을 대표 발의 하는 등 그의 도정활동은 지역과 중앙을 넘나들었다. 

작년 말 그는 도의원 활동을 마무리하며 시장출마를 결심했다. “중앙정치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말하는 이재준 당선인은 “시민들에게 보다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시장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마지막 정치도전을 택했던 그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공천경쟁을 뚫고 더불어민주당 시장후보가 된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 민선7기 고양시장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개발보다 삶의 질 향상 꿈꿔”
이재준 당선인은 예비후보 시절부터 줄곧 도시의 패러다임 전환을 언급했다. 지난 20년간 고양시가 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면 이제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생각이다. “집값이 높아지면 떠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이 당선인. 신규택지개발을 최대한 절제하고 원도심 기능을 다시 복원하는 방향으로 도시설계를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당선인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성장일변도로 빠르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좀 더 천천히 가면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도시로 바꿔나가는,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고민을 듣고 삶의 만족감과 행복을 주는 그런 시정을 펼쳐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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