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철들어볼까요> 절기이야기⑨ 하지

 

[고양신문] 지난 6월 21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였다. 하지는 여름 하(夏)와 이를 지(至)를 써서 여름이 왔다는 뜻이 담겼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인 것이다. 

하지를 천문학적으로 보면 태양이 황도 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데 이 위치를 하지점이라고 한다. 북반구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낮이 길고, 정오에 태양의 높이도 가장 높고,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에너지를 받는 때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 다음날부터 조금씩 늘어난 낮시간은 하지에 이르러 최고점에 다다른다. 낮 시간이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의 뜨거운 사랑이 쌓여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그래도 소서 무렵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 동서로 걸쳐 큰 장마가 시작되어 작열하는 태양빛을 잠시 식혀간다. 구름만 지나가도 비가 온다는 의미로 ‘하지가 지나면 구름장마다 비가 내린다’는 속담도 있다. 

예전에는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우리나라는 3~4년마다 가뭄이 들었기 때문에 왕실과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가 성행했다. 민간에서는 산이나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신성한 지역에 제물로 바친 동물의 피를 뿌려 더럽히면 그것을 씻기 위해 비를 내린다는 생각으로, 개나 소를 잡아 바위나 산봉우리 등에 피를 뿌려 놓는 풍습이 있었다. 여기서 잠깐 퀴즈.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꼭 내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답,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 웃자고 한 얘기다. 

농부들은 모내기를 마치면 병충해 예방작업을 하며 여름을 준비했다. 이 무렵 공원이나 산에 가면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많이 볼 수 있다. 6월 말부터 거미도 눈에 띄게 늘어나 여기저기 거미줄을 치고 ‘누구든 걸려라’ 기다린다. 사람들은 애벌레가 징그럽다고 민원을 넣고, 시에서는 민원 때문이라며 살충제를 뿌린다. 애벌레가 식물의 적정량을 뜯어먹어 양을 조절하고, 새와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면서 생태계는 균형이 맞는다. 공원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숲에는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숲에서는 부모가 물어다준 먹이를 잘 받아먹고 무럭무럭 자란 아기새들의 홀로서기가 한창이다. 숲이나 공원을 산책하다가 새끼새가 떨어져있다고 데려오면 안된다.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이소 과정에서 간혹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어미새가 근처에서 지켜보다가 새끼를 챙긴다. 측은한 마음에 아기새를 ‘구조’하지만 어미새 입장에서 보면 ‘유괴’와 다름이 없다. 

하지 무렵은 왕성한 태양 에너지 덕분에 먹을 것이 넘친다. 참외와 수박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
리를 수확해 먹기 시작하며 채소가 풍족해진다. 상추와 푸성귀 인심이 나는 계절이다. 과일은 이때 맛이 좋은데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싱거워진다. 강원도에서는 이 무렵 햇감자를 캐는데 하지감자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의 절후현상으로는 초후에는 사슴뿔이 떨어지고 중후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고 말후에는 반하 알뿌리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는 양의 기운이 가장 큰 날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양의 기운이 최고점에 달했으면 이제 음의 기운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사슴뿔은 앞을 향해 자라서 양을 상징하는데 하지에는 음기가 생성되고 양기가 쇠퇴하기 시작하는 시기라 양성의 뿔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제 곧 도시매미의 시끄러운 떼창이 시작될 때가 됐다. 

숲에서는 그다지 향기롭지 않은 밤꽃이 시들어가고, 인동덩굴이 금은화를 피워 벌을 불러모은다. 꽃비 흩날리던 벚나무는 이제 열매가 검붉게 익어 도로를 검게 물들인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컷 뻐꾸기의 ‘뻐꾹뻐꾹’ 노랫소리와 ‘홀딱벗고 잠만자네’ 노래하는 등검은뻐꾸기, ‘솥적다, 솥적다’ 솥 바꿔달라는 소쩍새,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가 이제 서서히 맴맴맴매~~~ 매미소리와 쓰르쓰르 풀벌레 소리로 바뀌는 시점이다. 귀를 크게 열고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래에 귀 기울이다보면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도 그냥저냥 견딜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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