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 나란히 선보이며 출간기념회

일산 한양문고에서 독자들과 만나
각자의 시가 태어난 마음자리 드러내

 

나란히 신작 시집을 출간한 문동만 시인과 김해자 시인이 일산 한양문고를 찾아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고양신문]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깊은 시선’을 지닌 김해자 시인(58)과 문동만 시인(49)이 고양시를 찾아 독자들과 만났다. 두 사람은 최근 신작 시집 『해자네 점집』(김해자, 걷는사람 시인선 1권)과 『구르는 잠』(문동만, 반걸음 시인선 1권)을 한 달 간격으로 나란히 출간했다. 시인선집의 첫 권은 해당 시리즈의 기획방향을 선언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김해자 시인은 국내에서 발간된 시인선집 중 1권을 장식한 최초의 여성시인이라는 점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7일 저녁 일산의 한양문고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서 사회를 맡은 황규관 시인은 두 시인을 “문화주의로 흐르는 최근의 시단 경향을 거스르며, 비주류의 소수자적 목소리를 담은 시를 여전히 쓰고 있는 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원석과도 같은 김해자의 시는 ‘시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듯하고, 문동만의 시는 세상의 아픔을 실존적으로 앓고 있는 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평했다.

오래전 『삶이 보이는 창』 이라는 민중문학잡지의 창간 기획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교유를 시작한 두 시인은 이날 출간기념회에서도 서로를 향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문 시인은 김 시인을 누나라 부르며 “욕망과 인정 욕구에 시달릴 때 겸양의 표사가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나는 조금 모자라지만, 그 모자람은 필요 이상으로 알려고 하지 않는 모자람”이라는 인상적인 평을 덧붙였다. 김해자 시인 역시 “문동만 시인의 시에는 광장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통점(痛點)을 감지하는 피뢰침이 있다”고 평했다.

 

"시는 누군가를 향한 울음에서 태어납니다"
『해자네 점집』(김해자, 걷는사람 시인선 1)

김해자 시인의 신작 시집에는 시와 이야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또는 아우르는 작품들이 빼곡하다. 충남 천안의 한 시골마을에서 촌로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김해자 시인은 이웃들이 토해놓는 깊은 속내를 가감 없이 시로 옮겼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단순한 장삼이사 이야기의 나열에 그치는 건 아니다. 쓸쓸하고 외롭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한 연민과 우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눈물 나게 그리며, 자본과 물질에 잠식된 문명을 예리하게 성찰한다. ‘붙들고 울 넘의 팔데기 하나 없’는 외로운 이들(양씨가 게발선인장에게)의 목소리를 전하며 ‘전기로 관절을 움직이는 피규어만이 팔리’는 세상을(독생대 인류세) 통찰한다.

김 시인은 출판기념회에서 “시집 출판을 제안 받고 달력에 100일 동그라미를 쳐 놓은 후 60여 편을 줄줄이 써내렸다”고 회고했다. 이웃들의 목소리를 타고 막혔던 시적 전율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이어 “유일한 방법론은 ‘누구나 이해되는 시쓰기’였다”고 고백한 후 “시는 쪼잔하게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아프면 울어주는 샤먼의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해자네 점집』(김해자, 걷는사람 시인선 1)


"고통을 벗어나려는, 또는 대면하려는 몸부림"
『구르는 잠』(문동만, 반걸음 시인선 1)

문동만 시인은 느리고 천천히 시를 쓰는 듯하다. 1994년 등단했는데 이제 겨우 세 번째 시집을 냈다. 이번 시집에는 제1회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소금 속에 눕히며’도 수록돼 있다. 세월호 비극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담은 ‘소금 속에 눕히며’를 두고 문 시인은 출간기념회에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 내가 스스로 살려고 쓴 시”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에서도 스스로의 상처를 선명히 드러내고, 또는 누군가의 상처 속으로 기어이 돌아가 자신의 설 자리를 마련하고야 마는 시인의 근성이 감지된다.

책머리 시인의 말에서 문 시인은 “나는 나에게 감동할 것이 희소했으므로 핏줄이나 사회적 혈연들에게서 그리움이나 한탄이나 웃음을 구했다”는 말로 창작의 태도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언제나 가벼운 날들을 열망하리라”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그의 희구와 열망의 자취들이 새로 나온 시집 갈피마다 가득하다.
문 시인에 대해 황규관 시인은 “고통의 경험을 회피하지 않는 독한 사람들이 시를 잘 쓴다”는 말을 덧붙였다.
 

『구르는 잠』(문동만, 반걸음 시인선 1)


“문학의 본령 굳게 지키는 이들”

두 시인의 출간기념회를 고양시에서 열도록 주선한 이는 고양시 문화생태계 마당발 김경윤 작가다. 『삶이 보이는 창』 창간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김 작가는 “가장 소개하고픈 두 시인을 한자리에 앉혀 놓으니 너무 벅차다”는 소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 작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문학은 건강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면서 “두 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리얼리티를 그려내는, 문학의 본령을 굳게 지키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얼리즘 계열의 시인들이 좀처럼 소개되지 않는 요즘의 출판 시장에서 두 시인의 희소가치는 더욱 귀중하다”고 평했다.
 

김해자 시인(사진 왼쪽)의 독특한 작품세계애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규관 시인.

 

자신의 시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낸 문동만 시인(사진 오른쪽)과 공동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은 김경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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