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보다 글로벌 체험 가치 우선

오락가락 정부 교육정책에 불안 
국내 고교·대학 진학 고집 않아
4차 산업혁명시대 이끌 혜안 모색

손재호 애임하이교육 대표

[고양신문] 10년 전 조기유학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때 학생이나 학부모의 가장 큰 목적은 영어 실력 향상이었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영어를 익히기 위해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보냈다. 

상류층 가정들은 자녀들을 아예 명문 보딩스쿨로 보내고 미국 대학까지 마치게 했다. 하지만 그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는 초·중학교 때 1~2년가량 유학을 마친 후 국내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교는 외고, 자사고 등 특목고로 진학하고 국내 대학으로 가는 로드맵이었다. 

당시 ‘관리형유학’이란 용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저학년 학생을 미국, 캐나다 등의 학교로 보내면서 현지에 한국식 기숙사를 운영하는 형태였다. 영어 때문에 미국, 캐나다 학교를 다니긴 하지만 언젠가는 국내로 복귀해서 특목고 등을 대비하려면 한국 교과 과정을 방과 후에 관리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들은 이젠 옛 얘기가 되었다. 관리형유학 시스템을 운영하던 유학원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 이제 국내에서도 영어를 유창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의 국내 영어학원이라면 입시를 위한 영어 학원뿐이었지만 지금은 말하기·듣기 위주로 가르치는 영어 학원들이 늘었다. 

제주, 송도 등에 국제학교들도 많이 생겼다. 미국, 캐나다를 가지 않아도 유창한 영어를 익힐 수 있게 됐다. 그래서 2010년 이후 조기유학생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교환학생 경우 2010년 1400명대에서 2017년에는 800명대까지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동안 줄어들던 조기유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일에 고양신문과 함께 주최한 ‘미국 교환학생 설명회’는 최근 몇 년 이래 가장 큰 성황을 이루었다. 설명회 참석자의 대부분은 중학교 1~2학년 학부모들이었다. 미국에 교환학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교환학생으로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영어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체험 더 나아가서 교환학생 이후 미국 대학 진학까지 염두에 두고 설명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형편이 좋지 않다면 아시아권 대학 진학도 긍정적으로 고려한다고 했다. 국내 고교나 대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부의 자사고나 특목고 폐지,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는 대입정책의 변화 등이 기름을 부은 것 같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몇 십 년 전 한 대기업 회장이 했던 말이 오히려 진리에 가까운 명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려면 과감히 떠나고 또 도전해야 한다. 조기유학은 외화 낭비가 아니다. 영어보다 더 값진 글로벌 체험을 위한 알뜰한 투자다. 

더 이상 자녀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며 책상에 붙잡아 두며 오직 대학입시만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 변하지 않는 국내 고교와 대학의 교육 시스템은 졸업과 동시에 자녀들을 실업자가 되거나 ‘공시(공무원시험)족’이 되게 할 뿐이다. 

몇 년 전 1000만 가까운 관객을 끌어 모은 ‘관상’이라는 영화에서 계유정난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낸 주인공이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읊조리는 장면이 나온다.

“파도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 거대한 파도도 결국 부서지게 마련이다. 나는 바람을 보지 못하고 저 높은 파도만 보았고 결국 시대를 읽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아이들이 눈앞에 보이는 파도의 물결뿐 아니라 그 파도를 움직이고 있는 ‘바람’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하며 변화하는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혜안을 갖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손재호 애임하이교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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