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카운터스'
8월 17일부터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


 


[고양신문] 재일조선인과 재일한인을 ‘혐오’하는 논리를 유포하고 인종차별을 선동하는 극우 궤변가 사쿠라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재특회’ 멤버들은 “일본땅의 한국인을 모두 죽여라”, “거리에서 한국여자를 보면 성폭행을 해도 된다” 등의 끔찍한 인종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시위를 펼친다. 재일조선인 소년이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살자”고 말을 걸어보지만, 되돌아오는 폭언과 협박 앞에서 공포에 떨며 눈물을 흘린다. 누가 봐도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 그런데 경찰은 혐오시위대를 저지하기는커녕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사회에서도 가슴 속에 양심과 정의감이 꿈틀대는 인간들은 존재하는 법. “혐오시위를 하는 너희가 쓰레기들이야”라고 외치며 혐오시위대에 맞서는 이들이 나타났다. 인종혐오의 부당성을 되받아쳐주는 ‘카운터스’들이 바로 그들이다. '카운터스'는 바로 이들의 활약상을 긴박하고 흥미롭게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혐오주의자 놈들에겐 주먹이 약이야”

영화 초반은 카운터스 중에서도 ‘오토코구미(男組, 남자조직)’라는 행동부대를 이끄는 다카하시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카하시는 참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간이다. 전직 야쿠자 출신 열혈남인 그는 재특회가 선동하는 혐오집회를 보고 ‘혐오’는 사내가 할 짓이 못 된다는 독특한 문제의식을 품고 재특회 집회에 대항하기로 한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방식이 바로 ‘혼내주기’, 정확히 말해 폭력이라는 것이다. 말로 해서 듣지 않는 비열한 녀석들은 주먹으로 혼쭐을 내 줘야 한다는 게 오토코구미가 혐오에 맞서는 방식이었던 것. 이런 방식은 이성적 질서를 견지하며 활동을 펼쳐온 카운터스 내에서도 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전선의 맨 앞줄에 서서 혐오시위대와 맞짱을 뜨는 다카하시와 오토코구미의 활약 덕분에 카운터스는 새로운 활기와 동력을 얻는다.

“혐오와 차별은 인간의 본성이라니까”

다카하시와 앙숙인 재특회 리더 사쿠라이도 무척 독특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한인과 조선인들을 ‘거주권을 거저 얻은 특혜층’이라고 호도하고, 그들이 일본사회를 무너뜨릴 거라는 가짜 공포를 조장하는 그는 혐오와 차별이 어떤 논리와 선동을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 모델이다. 그의 선동은 이성적으로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궤변임에도 그는 일본 사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지지와 정치적 지분을 획득한다. 영화는 “혐오는 현대사회의 오락이다”, “차별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다” 등의 논리로 인종 혐오를 정당화하는 그의 논리에 적잖은 이들이 박수와 지지를 보내는 일본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그려낸다.
 

욱일승천기와 나치 깃발을 버젓이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인종혐오 구호를 외치는 재특회 시위대.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차별에 대항하는 100가지 방법

다카하시와 사쿠라이라는 극강 캐릭터들 사이에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카운터스 멤버들의 면면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재일한인 아내를 보호하려다 오토코구미 행동대장이 된 기모토는 다카하시와는 생사를 함께 할 의형제다. 카운터 운동의 제창자 노마는 혐오 반대 운동을 일본의 새로운 시민운동문화로 정착시키는 주춧돌을 놓았다. 사진작가 로디는 카운터스의 활동을 기록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전략가 노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카운터스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밖에도 변호사, 대학교수,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 다른 일을 하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런 이들이 누군가는 힘으로 맞서고, 누군가는 논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매체에 진실을 알리는 방식으로 각자의 위치와 재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해 ‘차별 없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신나게 뛰어드는 모습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마침내 카운터스들의 활약 덕분에 2016년 일본 최초로 ‘혐오표현금지법’이 제정된다. 비록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내용까지 담진 못했지만, 적어도 혐오데모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승인되는 것은 막아낼 근거가 생긴 셈이다. 차별주의자들을 험악한 표정과 주먹으로 혼쭐을 내 준 오토코구미 멤버들도 1차 목적달성을 자축하며 기꺼이 해산한다.

혐오문화확산, 우리사회의 현주소는?

영화를 보는 내내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꽤나 심각한 질문 같지만, 사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표정은 고민보다는 쾌감에 가깝다. “나쁜 녀석들 패 주고 기꺼이 벌을 받겠다”면서 험한 역할을 자처한 다카하시의 명쾌한 행동주의 덕분에 카운터스 운동이 새로운 동력을 얻어내고, 혐오시위대를 위축시키는 실효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듯하다. 진보운동은 도덕적인 인물이 정당한 방식으로 펼쳐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적 선입견이 다카하시의 주먹 한방에 시원스레 날아가는 재미를 영화는 선사한다. 아울러 다양한 형태의 혐오문화가 이곳저곳에서 덩치를 키우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한다.

대중성 갖춘 화제작 만나는 G시네마

영화를 만든 이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 다큐멘터리를 공부한 후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과 재일한국인의 삶을 다룬 '당신의 행진곡', '다시 부르는 아리랑' 등의 작품을 만든 이일하 감독이다. 그는 도쿄 조선학교 권투부 이야기를 그린 전작 '울보 권투부'에서 보여준 차별의 문제를 이번 작품에서 보다 확장해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인종혐오의 기원과 거기에 맞서는 양심적 시민운동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그려냈다. 주제의식은 물론 소재를 다루는 기술과 각종 시각효과를 활용하는 만듦새까지, 일취월장한 감독의 솜씨를 러닝타임 내내 확인할 수 있다.

'카운터스'는 8・15 광복절을 기해 전국 개봉하는데, 고양시에서는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에서 상영한다. 경기도 후원으로 고양영상미디어센터가 진행하는 ‘G시네마’ 상영작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극영화의 재미가 부럽잖은 다큐멘터리의 펄떡거리는 감동과 만나고 싶다면 어울림영화관을 찾아가자.

다카하시를 비롯한 '오토코구미' 멤버들은 전직 야쿠자 출신임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혐오시위대와 맞서는 행동대장 악역을 자처한다.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고양영상미디어센터 G시네마
'카운터스'

일시 : 8월 17일~9월 8일, 매주 금·토요일 오후 2시/4시
장소 :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영화관
입장료 : 일반 5000원, 청소년·경로·복지 3000원
문의 : 031-814-8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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