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어릴 적 나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점점 나이가 먹으면서 더디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 젠장, 세월은 이렇게 빨리 흐른다는 것을 몰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것도 있지만. 두려움도 많아졌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조바심도 생겼다.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쨌을까?

다행히 이제는 단지 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이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30이 아니라 40, 50이 되어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청소년임에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진다는 것,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민주시민이 된다는 것,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청춘을 꿈꾼다지만, 이제 나는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어른이 된다는 건,

빌어먹든, 지어먹든, 벌어먹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자신이 버리지 않은 거리의 쓰레기를 기꺼이 줍는다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반은 자신을 위해 반은 공동체를 위해 쓸 수 있는 것. 많이 버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제대로 쓰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 찬성과 반대에 현혹되지 않고, 찬성 속에 반대를, 반대 속의 찬성을 읽을 수 있는 것.

언론에 나오는 나쁜 것들을 손가락질 할 때에 접힌 손가락 네 개는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아는 것. 칭찬받음을 부끄러워하고, 비판받음에 주눅 들지 않는 것. 자신에게 침 뱉는 사람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것. 아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공을 드러내지 않고, 이름을 알리려 분주하지 않는 것. 높이 오를 때 내려오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것. 말을 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줄 아는 것. 앎이 깊어질수록 무지가 커짐을 깨닫는 것. 공감대만큼이나 차이가 생겨야 삶이 넓어짐을 아는 것. 배움이 끝이 없음을 아는 것.

자신이 이 세상 만물 중에 하나에 불과함을 아는 것. 자신의 관점이 만 개의 관점 중에 하나임을 아는 것. 성, 국적, 종교, 지역, 귀천, 빈부의 차별이 자신에 대한 차별임을 아는 것. 사랑의 대상이 가족을 넘는 것. 나눔의 대상이 친구를 넘는 것. 타자를 기꺼이 환대할 줄 아는 것. 낯선 사람과 춤을 출 줄 아는 것. 다시 서고, 걷고, 뛰고, 나는 것. 즐거울 때 크게 울고, 슬플 때 크게 웃을 수 있는 것. 인생이 나그네 길임을 아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아는 것. 태어나 빌려 쓴 모든 것을 다시 돌려줘야함을 아는 것.

아, 어른이 된다는 건,

다시 어린이가 되는 것.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것. 돼지나 소나 개와 이야기를 나누고, 풀과 꽃들에게 인사할 줄 아는 것. 아침에 뜨는 태양에 고마워할 줄 아는 것. 소박한 밥상을 마주할 때 기도할 줄 아는 것. 지나다 눈빛 마주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할 줄 아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듯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잘 살았음을 아는 것. 그리하여 언제 죽더라도 기쁘게 그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는 것. 다시 우주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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