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수남 소설가

정수남 소설가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을 보며-

[고양신문] 지난 8월 21일부터 8월 26일까지 금강산에서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1차와 2차로 나뉘어 각각 2박3일 동안 이루어진 이번 행사에서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 혈육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분단의 아픔과 함께 핏줄이 무엇인가를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만남이란 처연하고 진솔하고 뜨거웠다. 더욱이 12시간이라는, 한정된 만남 뒤 작별할 때의 아픈 장면은 보는 이들까지도 눈시울을 붉게 했다.

2009년 제정된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이산가족의 법률적 용어는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남과 북의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 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였던 자를 말한다’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지해야 할 점은 이 용어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13만2600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벌써 7만5000여 명은 세상을 떠났고, 생존해 있는 분은 5만7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80대 고령이며, 지금도 해마다 4000여 명 가까운 분들이 운명을 달리 한다는 것이고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란 향후 10년이 지나면 아주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상봉의 현장에서도 역시 안타까웠던 점이 많았다. 우선 이번에도 획일적이며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는 점이다. 가족의 만남이란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수시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이처럼 당국이 주도하는 지정한 날, 지정된 장소에서, 형식과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당국의 편의에 의해 급조된 보여주기식 만남이 어찌 자유스러울 수 있겠는가.

물론 아직은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휴전선이 허물어지지 않고 있는 이상 사상과 체제에 따른 제약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이를 바라보는 주변 국가들의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면 모름지기 이를 과감히 혁파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하나는 이산가족 상봉 시기가 너무 띄엄띄엄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85년 9월 대한적십자사가 최초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주관한 뒤로 2000년 8월15일 이루어진 제1차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지금까지 18년이 흐르는 동안 이제 겨우 21차가 되었다는 수치가 무엇보다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는 그동안 정권이 수 차례 바뀌었다는 것으로 면피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소신이 없었으며,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개성에 두기로 남북이 합의를 마쳤으나 대북 제재 운운 하는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미루고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도 여기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

도대체 헌법에 명시된 우리의 ‘자주’란 무엇이며, ‘국민의 행복권’이란 무엇인가. 정말 민족의 아픔과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씻어주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당국은 이제라도 원론적인 발언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주체가 우리라는 것을 유념하고 스스로 적극성을 띠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9월에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 문제부터 먼저 풀어야 할 줄로 안다. 상봉의 현장에서 100세 할아버지가 80세 가까운 아들과 헤어지면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던 소리를 집권층은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일이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추석이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꿈에 부풀게 된다. 그러나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이산가족들은 그와 같은 꿈조차 꿀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고향을 왕래할 수 있는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하루 빨리 항구적인 만남의 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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