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익은 열매. <사진=김윤용>

 
[고양신문] 지난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습니다. 나무 그늘에서도 폭염을 피하기 힘들었습니다. 무더위를 핑계로 예전만큼 호수공원을 산책하지 못 했습니다. 카페와 도서관 등 냉방기를 빵빵하게 튼 실내에서 주로 보냈습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냉방기가 없던 시절에는 어찌 살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더운 여름이 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면서 다시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호수공원에서 자라는 팽나무를 보았습니다. 팽나무는 주차장이 있는 장미원 입구에서 전통정원 못 미쳐 텃밭 가까운 녹지에서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팽나무 밑에는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탱자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팽나무를 보며 다가온 추석과 함께 외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50여 년 전 제가 8살 때 일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신문지에 싼 소고기 한 근을 외할머니에게 보냈습니다. 형제 가운데 누군가는 외할머니 집에 심부름을 가야합니다. 담양천변을 따라 금성면 와룡리까지 가는 15리길입니다. 항상 제가 나섰습니다. 아버지에게 칭찬 받는 일도 좋았고, 차비를 챙길 수도 있으며, 외할머니가 주는 용돈이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는 “아이고 내 새끼” 하며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어린애가 이 먼 길을 어찌 왔을꼬. 힘들지 잉.” 하는 말에 다 자란 느낌이 들었고 내심 자랑스러웠습니다. 한과며 부침개며 각종 과일 따위 먹을거리는 심부름에 대한 큰 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먼 거리를 걸었을 겝니다. 해찰하며 싸묵싸묵 걸었던 관방천 반나절 길.
 

팽나무 익지 않은 열매. <사진=김윤용>


관방천은 전남 담양 관방제를 따라 오르는 담양천입니다. 관방제 옆 제가 살던 마을 이름은 객사리였습니다. 오래전에 베스트셀러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와 ‘객사리’라는 지명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 날개에 나온 지은이 소개 글 속에서 ‘객사리’라는 지명을 봤기 때문입니다. 살던 곳이 ‘객사리’던데 어딘가요, 라고 물었을까요. 황 작가는 평택 객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숙박시설과 뜨내기 느낌이 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객사’가 고려와 조선시대에 관리나 사신이 쓰던 객관이니, 그런 객사가 있는 마을이 객사리였던 것이지요.

담양 객사리 관방제 아래로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이 흐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담양댐이 생기기 전이니 수량이 제법 많았습니다. 여름이면 담양천에서 물놀이하고 대나무 낚싯대로 피라미나 갈겨니 따위를 낚았습니다. 민물고기 20마리씩 풀줄기에 꿰어 매운탕 집에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아이스께끼를 사 먹었지요. 아무런 걱정 없이 눈만 반짝이던 새카만 아이였지요. 물놀이에 지치면 팽나무 그늘 아래서 놀았습니다. 누가 더 용감한가 팽나무 오르기 시합을 했던 것도 같습니다. 팽나무는 꼬마들에게 맛있는 열매를 주었습니다. 붉노랑 열매, 까망 열매. 달콤했습니다. 아직 덜 익은 건 떫었습니다.

관방제는 조선시대에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인공 제방입니다. 제방 위에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200~300살 먹은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루었습니다. 굵기가 서로 다른 노거수.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잎떨어지는넓은잎나무 숲인 천연기념물 366호 관방제림. 2킬로미터 남짓인 관방제림에는 100여 그루 노거수가 자라고 있습니다. 푸조나무와 느티나무가 대부분이고 팽나무는 10여 그루밖에 없습니다. 어릴 때는 관방제 나무를 모두 팽나무로 알았습니다. 지금은 가을에 붉노랗게 익는 열매는 팽나무이고 검게 익으면 푸조나무라는 걸 압니다.
 

남원 광한루 팽나무. <사진=김윤용>

 

서귀포 팽나무. 제주도에서는 팽나무를 폭낭이라고 한다. <사진=김윤용>

 

강요배 화백의 작품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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