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되돌아보고 쓰다』 출간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학생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
개인사·시민운동 역사 갈무리

최근 민생경제연구소 설립
서민 시각으로 경제이야기

 

[고양신문] 지금은 민생경제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불리는 안진걸씨는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간판 일꾼(사무처장)이었다. 그에게는 ‘이명박근혜 정권 최다 기소 기록 보유자’라는 간단치 않은 형용사가 따라다닌다. 크고 작은 문제를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땀내 나게 뛰다 보니 얻게 된 별명이다.
그가 최근 신간 『되돌아보고 쓰다』(북콤마)를 출간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새 책은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사는 인간 안진걸의 비망록이자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시민운동 역사의 사진첩이기도 하다.
20년간 몸 담았던 참여연대를 나오자마자 민생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하며 어느새 ‘서민 호주머니 지킴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은 안 소장을 서대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간 『되돌아보고 쓰다』를 출간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시민운동의 최전선에서 숨가쁘게 살아온 시간들을 책 속에 담았다.

 

▶ 책 소개를 부탁한다.

참여연대 퇴직에 즈음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한 권 묶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그동안 이런 저런 매체에 기고한 글을 정리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했는데, 1부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시민단체 활동까지 내 인생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글을 모았다. 2부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2016~17년 박근혜 심판 촛불시민혁명까지의 긴박하고 땀내 나는 집회와 시위 이야기를 돌아봤다. 이와 함께 갑과 을의 문제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슈들에 대한 생각도 정리했다. 3부는 시민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 같은 길을 걸어 온 많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  

▶ 개인사를 간단히 들려달라.

전남 화순에서 자라며 고등학교 때부터 광주의 대학생 형들이 민주화 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91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강경대 학우가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 사건이 큰 충격을 줬다. 자연스레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이어지는 학생운동의 물결에 몸담았다. 대학을 졸업하니 IMF가 밀어닥쳤다. 처참한 정리해고와 실업사태를 보며 사회가 지옥이구나, 실감했다. 시민단체 활동에 뛰어들어 민주화 운동과는 결이 좀 다른, 서민들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다양한 이슈와 부딪치며 20년을 보냈다. 참여연대를 그만 둔 후 민생경제연구소를 만들어 반값등록금, 통신비·교육비 인하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일에 집중하고 있다.

▶ 책 안에 수많은 이름이 호출된다.

반응들이 오고 있다. 방송인 김미화씨도 무척 재밌어하더라. 박철민, 김여진씨도 늘 시위 현장에 나와 많은 도움을 주셨다. 김제동씨도 많이 도와줬는데 개인적 친분이 적어 책에 쓰지 못했다(웃음).
사실 책에 적지 못한 이름들이 더 많다. 기회가 된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의 활약상을 꼼꼼히 정리해 보고 싶다.

▶ 경제 문제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말하고 있다.

나는 서민과 노동자들이 가장 뛰어난 경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주거비, 교육비 부담이 큰 우리 사회에서 한 달 200만~300만원 받으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이들보다 더 절실한 전문가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TV나 신문에는 경제연구소 박사들이나,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는 경제학자들의 이론만 나온다. 재벌-대기업-학자-보수정당-보수언론이 손잡고 만드는 프레임이 아니라 서민-노동자-소규모상공인들의 시각으로 경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경제의 본뜻도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세상을 합리적으로 운영해 민중을 구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 참여연대 시절을 마무리하고 민생경제연구소 활동을 시작했다.

시민단체는 정치·경제권력 전체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하다 보니 관여해야 하는 이슈가 무척 많다.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도 있고,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
촛불시민혁명이 1차적 승리를 했다는 자평도 결심의 계기가 됐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이 진정으로 완성되려면 최저임금 인상, 전·월세 가격 안정화, 반값 등록금 실현, 복지 확대, 내수 활성화 등 구체적인 민생의 문제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하는 민생경제연구소에서 이 문제를 좀 더 집중적으로, 순발력 있게 파고 들 생각이다.

▶ 대중운동의 양상이 예전과 달라졌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에 촛불이 처음 등장한 이후 광우병 사태를 거쳐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감각과 문화가 전통적 시민단체의 감성을 앞서가며 점점 진보하고 있다. 시위 자체를 재밌고 수평적인 문화로 즐기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시민들은 평소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활동하다가 큰 이슈가 대두되면 하나의 흐름으로 결집한다. 그것도 무척 대중적이고 평화롭고 유연한 방식으로 말이다. 시민단체가 시민 속으로 들어가 배우고, 문턱 없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 책에는 ‘긍정’에 대한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온다.

사회나 구조나 조직에 문제가 있는데도 개인의 태도와 마인드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보수기독교, 코칭산업, 자기계발사업과 맞물려 미국에서 확장됐다. 개인이 스스로를 탓하며 수양하고 기도할 때 모순의 원인은 뒤에서 이를 비웃는 듯하다. 이런 ‘가짜 긍정’은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생명의 안정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등장한다. 시간 걸리더라도 인류가 진보한다는 사실을 믿고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나가는 ‘진짜 긍정’은 꼭 필요하다.
 

『되돌아보고 쓰다』(안진걸 지음. 북콤마)


▶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경제성장 정책이 순탄치 않은데.

우리나라 자영업자 숫자가 600만 명이고, 월급노동자는 2000만 명이다.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최고로 많이 받아봐야 한 달에 130만원밖에 안된다. 이 돈으로 뭘 소비하겠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 이야기처럼, 경제 위기 시기에는 서민을 돕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옳다. 서민들은 소비 탄력성이 커서 경제를 능동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입증된 모델이다.
그러면 누가 이것을 불편해할까? 최저임금이 오르면 전체 노동의 가치가 상승하고, 최저임금마저도 줄 수 없는 지금의 수탈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싫은 세력들, 바로 재벌·대기업이다. 또한 그들 편에 서 있는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이다. 그들이 마치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한목소리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경제뉴스들이 ‘기-승-전-최저임금 탓’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호들갑 때문에 일반인들도 괜한 공포심을 안게 되는 것이다.

▶ 일부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맞다. 당장 최저임금도 주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거부감이 심하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편의점주 수익 악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맹본부와의 불공정 계약, 건물 임대료, 신용카드 수수료 등이다. 이런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면 최저임금을 충분히 올려주고도 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다. 을과 병이 서로 싸우지 말고 수퍼 갑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 시민운동도 중앙에만 집중되는 느낌이다. 지방분권에 대한 견해는.

건강한 지방분권이 실현되려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언론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약속했다. 이 약속을 실현하려면 지방에 더 많은 재정과 권한을 이양하도록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좋은 가장’은 아닌 것 같다(웃음).

그동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가족들이랑 많은 시간 보내려고 노력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가족여행도 가 보고 싶다. 시민단체 80군데에 후원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가족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뭔가 수입될만한 일거리를 열심히 찾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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