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새라새 스테이지 1호 성기웅 작·연출
유쾌한 에피소드에 암울한 시대의 그늘 담아
1930년대 서울말씨·생활모습 흥미롭게 재연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의 13일 새라새극장 공연 장면. 일제강점기 배경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유쾌한 에피소드가 이어지지만, 이면에는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사진=고양문화재단>


[고양신문] 소설가 구보(박태원)씨의 작품 속에 담긴 1933년 경성의 어느 하루가 연극무대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은 서울토박이 작가로서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흔적을 남긴 구보 박태원의 소설과 에세이, 실제 삶의 흔적을 바탕으로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이 재창조한 연극이다.

경성의 한복판인 청계천변 광교 옆 공애당 약국 2층에 사는 젊은 소설가 구보. 굵은 검은테 안경을 쓰고, 창작노트를 옆구리에 낀 구보는 멋쟁이 단장을 짚고 경성 거리를 거니는 그는 자기 주변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그리고 보고 들은 모든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30년대 경성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소설 속에 담아낸다.

연극은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구보의 하루를 따라가며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차례로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는 경성사람들의 모습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측은하고 애잔하다.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밀려드는 풍경 속에서 명랑함과 자잘한 재미를 누리기도 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어두운 절망과 공허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다.

작품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감각적인 무대 연출로 연극적 재미를 선사했다. 세 칸 미닫이 문이 달린 무대세트는 각각의 에피소드에 따라 주인공들이 사는 집이 되기도 하고, 경성 시내를 달리는 열차칸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2층 책상에 앉은 구보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1층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글을 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반대로 1층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는 구보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2층에서는 동경 유학시절의 에피소드가 전개되기도 한다.
 

구보 박태원이 맞선을 보는 장면. 무대세트 2층에서는 일본 유학시절 쓴 소설의 장면이 펼쳐진다. <사진=고양문화재단>


1930년대의 다양한 사료들을 다채롭게 활용한 부분도 흥미롭다. 연기자들은 지금과는 다른 당시의 서울 말씨를 맛깔나게 되살렸고, 근대사박물관에서 만날 법한 신문 삽화 이미지나 유성기 녹음자료 등이 적절히 삽입돼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 특히 지금은 쓰지 않는 옛말이나 대사 속에 섞여 나오는 일본어를 별도의 자막으로 설명한 부분은 관객들이 일정한 정서적 거리감을 두고 연극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관찰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노린 듯했다.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은 연출가 성기웅과 그가 이끄는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창작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 2007년 초연돼 당시에는 생소한 소재였던 30년대 경성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 평단의 높은 평가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성기웅 대표는 11년째 박태원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파고들며 4편의 ‘구보씨 연작 시리즈’를 차례로 발표해왔다. 그는 “구보 박태원은 무척 다채롭고 복잡한 캐릭터”라며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은근한 맛이 배어나오는 음식”에 비유했다. 그의 말대로 11년만에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돼 찾아온 연극은 오래 묵은 재료로 만든 ‘새로운 맛’을 고양의 관객들에게 유감 없이 보여줬다.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은 고양문화재단(대표 박정구)이 동시대 중요한 문제작을 만들어내는 젊은 연극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시리즈로 기획한 ‘새라새 스테이지’ 프로젝트의 첫 무대로 초청된 작품이다. 고양문화재단은 성기웅 연출가에 이어 새라새 스테이지 두 번째 작품으로 극작가 김은성, 연출가 부새롬의 작품 ‘썬샤인의 전사들’을 선정해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새라새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연극의 마지막 에피소드 '성탄제'의 피날레. 암울한 시대상을 위로하듯 흰눈이 내린다. <사진=고양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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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때 헤어진 아버지의 작품, 늘 배낭 속에 넣고 다녀요”

 

<인터뷰> 연출가 성기웅 · 박태원 차남 박재영씨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공연 마지막 날 낮 공연 후에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작품을 만든 성기웅 연출가와 원작자 구보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구보 박태원 기념사업회 부회장)씨가 참석했다. 성기웅 연출가는 연극의 배경과 창작 과정을 흥미롭게 들려줬고, 박재영씨는 9살 때 헤어진 아버지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을 회고했다.
 

9살 때 헤어진 아버지(소설가 박태원)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고 있는 차남 박재영씨. 왼쪽은 연출가 성기웅씨.

 
▶ 구보 박태원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작업에 오랫동안 매달리고 있다.

성기웅 - 극 중에서 묘사된 대로 박태원과 이상은 절친이었다. 그러나 이상은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하지만, 박태원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북에 남아 남한에서 오랫동안 봉인된 작가였다. 성격도 판이하다. 이상이 괴팍하고 전위적인 독설가라면, 박태원은 보다 점잖은 사람이지만 캐릭터가 정해지지 않은 사람이다. 행적도 마찬가지다. 젊어서는 비정치적 문학을 한 양반이 나중에는 북으로 가서 활동하지 않나. 보면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면이 많아 손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 (박재영씨에게)연극을 보신 소감을 들려달라.

박재영 - 돈암동에서 태어나 성북국민학교 3학년을 다니던 9살 때 아버지(소설가 박태원)와 헤어졌다. 2007년 성기웅 연출가가 아버지 작품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겠다며 찾아와 이런 저런 조언을 했다. 2010년 또 다른 연극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공연할 때는 마지막 장면에 출연해 낭독을 하기도 했다. 이게 그때 쓴 안경이다. (굵은 검은테 안경을 꺼내 쓰며)내가 아버님과 모습이 비슷하다고들 한다.

▶ 구보 캐릭터가 유쾌하고 유머러스해서 인상적이다.

성기웅 - 이번에 구보역을 맡은 강희제 배우가 그동안 구보 중 가장 젊다. 연극 속 구보도 20대 초반이라 젊고 활달한 구보를 만들어봤다. 사실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게 쉽지는 않다. 단순히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은 나 역시 원치 않는다. 소소한 경성의 일상 역시 역사와 정치적 맥락 속에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 연극에서 박태원의 원작과 연출가의 창작은 각각 어느 정도인가.

성기웅 - 여섯 개의 에피소드 중 일부는 원작의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도 있고, 일부는 원작에 몇 줄 언급만 된 내용으로 창작하기도 했다. 연극을 만들며 당시의 말투를 최대한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10년 가까이 다양한 자료를 연구하며 말이다. 염상섭과 박태원의 소설에 당시 서울말의 흔적이 남아있다. 새롭게 발굴되는 옛날영화나 유성기 녹음자료도 참조했다. 서울 토박이인 박재영 선생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안국동 토박이인 원로배우 오현경 선생을 찾아뵙기도 했다.

▶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선정한 의도는.

성기웅 - 크게 보면 소설가 구보의 하루를 따라가는 구성이다. 전반부는 유쾌한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이야기로 시작해, 하루가 저물어가며 시대성이 담긴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 대사를 섞어 쓰곤 하는데, 우리가 생활 속에서 영어를 쓰듯 당시에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언어가 침투해 오는 것을 통해 시대를 직시해보고 싶었다. 지금과는 다른 성의식에 대한 묘사도 당시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의도다.
 

극 중 절친으로 등장하는 소설가 박태원과 시인 이상. 실제로 둘은 무척 가깝게 지냈다. <사진=고양문화재단>


▶ (박재영씨에게)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들려달라.

박재영 - 아버님이 이상에 대해 쓴 소설이 9편가량 될 정도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 1939년 ‘제비다방’이라는 작품에는 삽화도 아버님이 직접 그렸다. 이상이 죽고, 한달 뒤 소설가 김유정이 죽었을 때, 두 분의 추도식을 아버님이 주도했다.

극 중 구보씨와 선을 보는 여성은 바로 우리 어머니 김정애 여사다. 1930년 숙명여고보 졸업반 영어연극 주인공을 맡은 어머니를 보고 아버님이 홀딱 반하셨다고 하더라. 졸업 후 중매쟁이를 보냈는데, 외할머니에게 1차 퇴짜를 맞았다. 나중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신문에 연재하실 때 다시 중매를 시도해 비로소 합격 판정을 받으셨다.

하지만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북으로 가시면서 영영 이별을 했다. 아버지는 북에서도 평생 전업작가로 사셨다. 말년에는 오랫동안 실명과 전신불수로 누워 계시면서도 구술로 끝까지 소설을 쓰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남과 북을 통틀어 아버지가 남긴 작품은 350편쯤 된다. 그중 두 작품만 빼고 모두 찾아냈다. 지금도 내 배낭 속에는 아버지의 작품 목록이 항상 들어있다.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을 만든 연출가 성기웅씨(사진 왼쪽)와 구보 박태원의 차남 박재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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