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포커스 – 동국대일산병원, 세계 최고 수준 ‘뇌혈류지도’ 개발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공동개발
뇌경색 치료에 즉시 활용 가능
기존 저해상도 지도 오류도 발견

 

김동억 동국대 교수가 뇌경색 환자 진료에 뇌혈류지도를 활용하고 있다. MRI 영상(왼쪽 모니터)과 뇌혈류지도(오른쪽 모니터)를 대조해 어떤 대뇌동맥 혈관계가 막혀서 뇌경색이 발생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진=동국대일산병원 제공]

 

‘빅데이터는 알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사소한 데이터 한 조각도 100개, 1000개가 쌓이면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미지의 세계인 두뇌의 영역으로 가면 빅데이터는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한다. 두뇌 빅데이터의 산물, ‘뇌지도’ 개발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다.

국내 연구진이 뇌경색의 원인 진단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고해상도 뇌혈류지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동국대 일산병원(병원장 조성민) 김동억 교수 연구팀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박상열) 국가참조표준센터가 전국 11개 대학병원의 뇌경색 환자 1160명의 뇌 영상 데이터(MRI·MRA)를 기반으로 현존 최고 수준 해상도의 뇌혈류지도를 개발한 것이다. 

뇌혈류지도, 뇌경색 원인 역학적 확률 제공 
뇌혈류지도는 특정 대뇌혈관이 막혔을 때 뇌의 어떤 부위에 뇌경색이 생기는지 조각별로 역학적인 확률을 제공하는 빅데이터 기반 뇌 지도다. 특정 대뇌혈관이 혈류공급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각기 다른 색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환자의 뇌 영상 사진과 비교하여 손쉽게 막힌 혈관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동국대학교 일산캠퍼스 산학협력단은 동국대 일산병원 조성민 병원장, 김원태 ㈜JLK인스펙션 대표, 동국대학교일산병원 신경과 김동억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술이전 협약식을 갖고 상용화를 위한 작업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업체인 JLK인스펙션은 인공지능 엔진과 영상처리 알고리즘의 핵심기술로 보유하고 있다.

뇌경색의 발생원인과 진단 정확한 파악
뇌혈관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암과 심장질환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사망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뇌 조직이 혈류공급을 받지 못해 괴사하는 뇌경색이 질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뇌경색은 뇌에 혈류를 공급하는 세 종류의 대뇌동맥(중대뇌동맥, 후대뇌동맥, 전대뇌동맥) 혈관계 중 한 곳 또는 여러 곳이 막혀서 발생한다. 대뇌동맥 혈관계가 한 곳이 막혔는지 두 곳 이상이 막혔는지에 따라 검사 방법, 처방약의 종류 및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막힌 혈관계의 정확한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뇌혈류지도 : 각각의 대뇌혈관이 혈류공급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을 색으로 구분한다. (빨간색-중대뇌동맥 / 녹색-전대뇌동맥 / 파란색-후대뇌동맥)

 

세 종류의 대뇌동맥은 뇌를 세 부분으로 나눠 각각의 혈류 공급을 담당한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각 대뇌동맥이 지배하는 뇌의 영역을 영토처럼 구분한 뇌혈류지도다. 현재 병원에서는 뇌혈류지도를 뇌경색 환자의 영상 데이터와 비교하여 원인이 되는 뇌동맥을 진단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뇌혈류지도가 20~100여명의 적은 표본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확실도가 커지며 진단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연구팀이 개발한 고해상도 뇌혈류지도는 약 1200cc의 뇌를 1.5cc 크기의 미세 조각들로 나누어, 특정 뇌동맥이 막혔을 때 뇌의 어떠한 부위에 뇌경색이 발생하는지 통계적인 확률을 제공한다.

표준화된 의료 빅데이터 기반 지도 개발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기존 뇌혈류지도에 전대뇌동맥과 후대뇌동맥의 영역으로 표시되었던 뇌의 부위 일부가 중대뇌동맥의 영역이었음을 밝혀냈고, 의료계에서 100년 가까이 사용 중인 기존 저해상도 뇌혈류지도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밝혀내 뇌졸중 분야 세계적 석학인 호주 멜버른 대학의 제프리 도난(Geoffrey Donnan) 교수로부터 ‘탁월한 업적이며 앞으로 고전이 될 논문이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번 뇌혈류지도는 특정 기간 동안 11개 대학병원의 급성뇌경색 입원 환자 총 1160명 전수의 MRI 데이터를 정량분석해 개발했다. 약 4억 복셀·1만 영상 슬라이스·1160명의 700가지 임상정보 등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최고 수준의 해상도를 제공한다. 또 병원마다 장비나 측정방식의 차이로 생길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표준화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일선 병원에서 참조표준[측정데이터 및 정보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과학적으로 분석 평가해 공인함으로써 국가사회에 널리 사용되도록 마련된 자료(국가표준기본법 제16조)]으로 바로 믿고 사용할 수 있다. 고해상도 뇌혈류지도는 진료실에서 걸어두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도판 형태로 제작돼 연내에 무료 배포될 예정이다.

2014년·2016년 연구 성과인 ‘허혈뇌지도’는 만성적으로 뇌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생기는 ‘허혈성 뇌 손상’의 정도를 판정하고자 우리나라 뇌경색 환자 기준 1등부터 100등까지 구분해 놓은 것이다. 뇌혈류 순환 관련 뇌 건강 정도를 판단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뇌혈류지도’는 각 대뇌동맥이 지배하는 뇌의 부위를 국가 영토처럼 색깔로 구분해 놓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지도’라는 명칭에 더욱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급성 뇌경색 환자의 원인 진단과 뇌졸중 재발 방지 치료에 즉시 활용할 수 있고, 기존 연구의 오류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더욱 큰 의의를 갖는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진료 신뢰성도 높일 수 있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김동억 동국대 일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고해상도 뇌혈류지도는 뇌경색의 원인 진단은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한 약물 선택 시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며 “의료의 질 향상을 통한 비용 절감 및 국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오 KRISS 국가참조표준센터장은 “1만 개 이상의 영상 슬라이스를 생산단계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 완성한 참조표준”이라며 “표준화된 의료 빅데이터는 일반 진료는 물론 인공지능(AI) 진료의 신뢰성 또한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국가참조표준데이터개발보급사업의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의학협회가 발행하는 저명국제학술지 자마 뉴롤로지(JAMA Neurology) (IF 11.46)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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