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수남 소설가

정수남 소설가

[고양신문] 얼마 전 일이다. 미국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남북의 관계자들이 오랜 시간 숙의 끝에 내놓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철도연결 사업 등에 관해 기자들이 묻자 이렇게 말했다.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유엔 안보리에서 결정한 북한제재를 준수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씩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는 것은 분명 그 속에 어떤 저의가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더구나 평화 체제로 가는데 족쇄가 되고 있는 5.24 조치를 우리 스스로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혹시 그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나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런 속셈이 조금이라도 감춰져 있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훼손하는 오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긴, 그의 오만과 편견이 비단 어제오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대통령 취임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First America, First America! 세계가 아니라 자국의 우선권을 가장 먼저 외치는 그를 보며 그날 많은 사람들은 세계를 보듬고 가야할 최강국 지도자의 철학과 비전보다는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은 한 사람의 독선을 본 셈이었다. 혹자는 그와 같은 그의 발상이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세히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 또 구태여 알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의 발언이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셀프 디스’조차 모르는 그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다. 그만큼 그동안 우리를 도와준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돌아보면 미국이란 나라는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가게 만든 당사국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더더욱 그의 발언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비핵화에 관한 그의 발언 역시 그렇다.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5000개 이상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면서도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더구나 엊그제는 그동안 탈냉전의 기반이 되어 왔던 중거리핵전략조약조차 일방적으로 탈퇴해 버렸다. 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에 대해 비핵화하기 전까지는 결코 제재를 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며 오만이 아닌가. 비핵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런 강압적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더구나 비핵화란 게 우리의 안보보다 자국의 안보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유엔이라는 막강한 국제기구를 등에 업고 북을 날마다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유엔이란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평화를 유지하고 각 나라 사이의 우호를 다지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인도적 문제에 대해 서로 협력하기 위해 1945년 10월 24일 창설된 국제기구이다. 따라서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북한의 제재를 오래 끌고 가는 것은 그 정신에 위배된다고 본다. 하지만 작금의 유엔이란 미국의 막강한 힘에 좌지우지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트럼프의 오만과 편견에 우리가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70여 년 동안 굳게 닫혔던 문을 열겠다고 했다면 그쯤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의 오만은 한시적이지만 우리의 목적은 영원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외교정책을 펼쳐 더 많은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또 안으로는 방관 또는 이탈된 세력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결집시켜야 할 일이다.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서둘러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황소처럼 뚜벅뚜벅 한 길을 걸어간다면 결국은 그의 오만도 평화를 희구하는 우리를 더 이상 제어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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