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광석

고광석 대명한의원 원장

[고양신문] 위 층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살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거가 시작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숨차고 머리가 아프다는 호소를 자주하게 되었다. 그런 날이 잦아지다 급기야 SOS를 치시고 말았다.

노인은 손자에게 ‘그렇게 살려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뱉으신 모양이다.그 말을 들은 손자는 화가 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노인은 거실에서 마시고 난 청심원 병을 놓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손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시준비를 하고 있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많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에 가고 오밤중이나 꼭두새벽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외로운 때 손자와 함께 살게 되었으니 나름 기대도 있었으리라. 말동무도 되고 밥도 함께 먹으며 단란한 날들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자는 할머니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할머니의 생각에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 이 두 사람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내가 낸 처방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것, 경청이 곧 우정의 시작이 된다는 얘기였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시어도어 젤딘 교수의 ‘인생의 발견’이란 책을 읽으며 터득하게 된 내용인데 여러모로 배우게 된다.

두 사람이 잘 지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이라고 한다. 그 두 사람이 누구건 간에 우정이 있다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데 할머니와 손자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니 이 두 사람을 이어 줄 끈은 서로 다정하게 여기는 감정을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노인은 상대방에게 화를 내듯 툭툭 말을 내던진다. 일단 말을 들으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다. 대화의 기술, 부드러움도 요구되고 경청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내 생활 패턴대로 끌고 가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되어 그런 얘기를 했다.

이야기 하는 동안 점점 얼굴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돌기 시작한다. 손자에게도 기본적인 일상의 패턴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한다. 그러니 그 선을 너무 벗어나지 않도록 좀 신경을 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이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 같은 거라는 말도 덧붙여서.

그런데 손자는 뜻밖에도 할머니에 대해 전혀 서운한 감정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빨래도 해주시고, 밥도 해주셔서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쿨한 성격을 알게 되니 마음이 놓인다. 결국 할머니 혼자만 애를 끓이고 계셨던 것이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사과로 훈훈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인은 참으로 고약한 존재라고 했다. 불통의 현장을 겪으며 그 말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가짜 뉴스가 왜 그렇게 기승을 부리는지도 알게 되었다. 세대 간 간극을 메우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하지만 노인들의 아집과 불통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귀 닫고 고집만 부리는 그런 노인이 아니라 좀 더 진실에 귀 기울이는 현명한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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