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곤혹스러운 ‘파이팅’

[고양신문] 11월 말, 한국와 일본의 지식인 NGO, 예술인, 학생 시민 등 각각 50명씩 총 100명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한일시민 100인 미래대화’가 2박3일간 일본 동경도 치바에서 있었다. 한일 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예전과 다른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다. 전체 토론이 끝난 뒤에 우리 모두는 단체사진 촬영시간을 위해 계단에 모였다. 그냥 밋밋한 사진보다 뭔가 활력적인 장면이 필요하다고 사진사가 주문하자 한국인 한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하면서 찍자고 제안하였다. 한국인이라면 어색할 것 없는 일상화된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구호이자 사진 촬영할 때 늘 외치곤 하는 구호이다. 한일양국이 서로 힘을 합쳐 열심히 잘해보자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자리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싸우자’는 구호는 도대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평화를 만들자는 대회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도 했다. 대체 누구와 싸우자는 말인가? 일본과 한국이 서로 다시 싸우자는 건가? 더욱이 일본인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행동이니 말이다. 아무튼 오른손을 펼치며 ‘평화!’라고 하자는 본인의 긴급제안을 모두가 동의하여 그렇게 촬영을 마쳤다. 불편했던 것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이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여러 현장에서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할 때마다 항상 곤혹스럽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라’는 옛말처럼 싸우지 않을 것을 권장하는 것이 우리의 규범과 도덕임에도 왜 이렇게 전투적 삶을 일상화하며 전의를 다지고 싸움을 부추기는가 말이다.

너와 나를 분리하고,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상

일상적 삶이 전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매 순간이 싸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교 아이들의 교육도,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교육’이 아니라 ‘이기고 승리하는 교육’을 주입하니, 우리의 일상이 전투적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일상을 이기고 지는 관계로 익숙해지는 삶이 과연 바람직할까. 내가 승리하면 누군가는 패배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고 누구를 거꾸러뜨리고 굳이 승리하려는가 말이다. 전투는 필연적으로 상대와 나를 명확히 가르고 구분해야한다. 또한 전투를 통해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강화시켜 자기조직의 단결을 도모하기도 한다.

실제 오늘날 자연수탈과 지배의 야만적인 문화가 시작된 것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왜곡하여 사회에 적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 생존경쟁’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무작성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식민지 개척 등 모든 제국주의의 행위는 자연법칙에 맞는 행위라고 정당화해온 이론이었다.

그러나 지리학자인 크로포트킨은 저서 ‘상호부조론’에서 자연은 상호의존하며 상호협력하는 관계가 규정적이며, 상호협력하는 종이 다음 진화과정에 오래 살아남는다고 한다. 경쟁은 자연계의 아주 적은 부분적 측면일 뿐 전체적인 성격은 아니며 이 또한 상호의존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현재 오늘날 생태학자들은 스펜서보다 크로포트킨의 말이 자연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사회도 경쟁보다는 협력과 협동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도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파이팅을 대신 할 언어 찾아내자

파이팅은 본래 투지(파이팅 스피릿 : fighting spirit)라는 용어에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 ‘파이팅’만 남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보통 ‘간바레’ 또는 ‘화이토’라고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화이토에서 파이팅이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60년대 재일동포 야구인들이나 야구팬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되었다거나, 일본의 군국주의 시절 호전적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해, 또는 가미가제가 출격할 때 썼던 용어로 일제 잔재라고 주장되어왔다. 그래서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스포츠에서도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절대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파이팅'은 영미권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용어로 그들에게는 ‘잡아 죽이자’는 높은 수준의 폭력적  인 용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정정당당함을 겨루는 스포츠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외래어로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영미권에서는 보통 ‘잘했어, 잘해봐’라는 격려의 의미로, ‘Go for it', 'Go ahead', 'Way to go', ‘Keep it up’, 'Good luck'을 사용하고, 팀 단위의 응원에서는 ‘Go! (팀명)!’가 많이 쓰인다. 아니면, 목소리를 높여가며 Go! Go! Go! Go!를 연이어 외칠 때도 있다. 그래서 스포츠계에서는 대안으로 ‘아자’라는 표현을 써보라고 권장한다. 평화를 위한 사회활동에서의 경우 오른손을 펼쳐 앞으로 뻗으며 ‘평화’라고 외치는 것을 본인은 제안하고자 한다.

한편 ‘국어 순화 자료집’에는 ‘힘내자’로 기록되어있고, 국립국어원 ‘파이팅’을 ‘아자’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더불어 장소와 필요에 따라 ‘아리아리’, ‘힘내자’, ‘영차’, ‘잘해라’, ‘지화자’, ‘얼씨구’, ‘뛰어’, ‘가자’, ‘최고야’, ‘어기여차’ 등의 말을 사용하길 권유한다. 연말연시에 ‘파이팅’ 대신에 창조적인 용어를 개발해 사용해 보길 권한다. 세상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니까 말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