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정말 기적처럼 농장을 구했다.

현재 농장과 규모는 비슷한데 야산 비탈에 자리 잡은 덕분에 놀면서 농사짓기에는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더욱 반가운 건 그곳에서 농사지어온 분들이 유기농을 해왔기에 흙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들어온 농장을 얻으면 최소 삼 년은 병해충과 싸워가며 악전고투를 벌여야 한다. 행여 그런 땅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내심 속을 끓여왔는데 흙을 한 움큼 쥐고 냄새를 맡는 순간 마음이 다 환해졌다.

앞뒤 따질 것도 없이 곧장 계약금을 치렀고, 농장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보며 다양한 그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텃밭을 일군다는 건 단순히 농사만 짓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텃밭을 얘기하면 흔히 농사만 떠올리기 쉬운데 어떤 상상을 펼치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새로 얻은 농장에는 아무런 기반 시설이 없어서 당장 이런저런 시설작업부터 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짓고 싶은 건 예쁜 도서관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책을 읽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잘 꾸며놓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농장 위쪽으로는 소나무숲이 있는데 그곳에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떠올릴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이 층짜리 공간을 꾸며서 큐레이터서점을 운영할 계획이다. 1층에는 엄선한 이삼십 권의 책을 미술작품처럼 전시하고, 2층은 소박한 카페처럼 꾸며서 문화아카데미를 운영해보고 싶다.

도서관 옆에는 흙벽돌로 찜질방을 만들어서 모두가 오순도순 둘러앉아 하루의 피로를 풀며 수다를 떨게 하고 싶다. 그리고 찜질방 입구에는 가마솥을 걸어서 텃밭작물을 활용한 요리교실도 꾸미고 싶다.

도서관과 찜질방을 만들 공간 뒤쪽으로는 수십 년 된 호두나무를 비롯해서 몇 그루의 큰 나무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네와 해먹을 매달고 그 앞으로 백 평쯤 되는 마당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마당 한 쪽에는 캠핑을 할 수 있게 꾸며서 이웃들이 둘러앉아 텐트도 치고, 밤이면 캠프파이어를 하며 영화도 보고, 음악감상도 해가며 삶의 여가를 느긋하게 즐기게 하고 싶다.

물론 농장이니까 농사도 지어야 한다. 하지만 농사가 중심은 아니다. 도시에서의 농사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수확물이나 가공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작은 장터도 열 수 있다.

그리고 청년들을 모아서 함께 농사짓고, 가공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거들면서 그들 스스로 대안적 삶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 텃밭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직업학교도 될 수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텃밭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서 목공교실이나 옷 만들기 교실도 만들어보고 싶다.

소나무숲 안에는 닭장을 만들어서 닭도 키우고, 표고버섯도 재배할 계획인데 여기에 청년들이 결합하면 이 또한 하나의 교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생태를 몸으로 익히고 배울 수 있는 자연학교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토종씨앗 전용 텃밭도 일굴 계획이다.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가다 보면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자유농장이 우리 회원들만의 농장이 아니라 모두의 농장이 되고, 전국 곳곳에 더 훌륭한 농장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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