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

아람누리도서관 ‘조선의 명화읽기’ 특강
웃음 빵빵, 쉽고 재밌는 강의 듣다 보면
옛그림의 아름다움과 멋 자연스레 눈 떠

 

경쾌한 강의로 우리 옛그림의 세계를 소개하는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


[고양신문] 지난 3일 저녁 아람누리도서관 강의실에서 ‘조선의 명화 읽기’ 두 번째 시간이 진행됐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 게다가 비까지 오는 쌀쌀한 저녁시간에 열린 강의였지만 강의실은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이 청중들로 가득 찼다. 흥미진진한 강의로 입소문이 난 탁현규 강사의 ‘은근한 인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를 주제로 강의를 펼친 탁현규 강사는 이날도 특유의 입담을 펼치며 옛그림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주었다.

미술사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간송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탁현규씨는 아람누리도서관에서만 벌써 4번째 옛그림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강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명하다. 쉽고 재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강의 중 툭툭 던지는 본인만의 유머 코드 감각이 탁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강의가 단순한 흥미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옛그림이 익숙하지 않은 이라도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그림에 숨은 법칙과 매력을 하나 둘 발견하는 쾌감을 선물 받는다. 문외한인 기자 역시 겨우 2번의 강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화가들이 옛그림 속에 어떤 느낌과 생각을 담고자 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탁현규 강사는 이론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냥 그림 한 점을 화면에 턱 띄워놓고 요기조기를 짚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산수화속에 숨은 선비를 찾게 하고, 일부러 전체를 그리지 않고 대상의 일부분을 가려놓은 화가의 멋스러운 속내를 발견하게 한다. “우리 옛그림 속에는 키워드가 곳곳에 숨어있어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키워드를 꿰어 스토리를 엮어내는 것이 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옛그림이 아주 재미있게 다가오거든요.”
 

아람누리도서관을 찾은 독자들이 풍부한 그림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탁현규 강사의 강의를 흥미진진하게 경청하고 있다.


그는 서양그림과 차별되는 우리 옛그림만의 매력 몇 가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산수화는 서양풍경화와 달리 올려보고, 내려보고, 멀리 바라보는 3가지 시점을 한 화폭에 동시에 담아내 훨씬 풍부한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리적 특징도 달라요. 서양화는 액자에 넣어 고정하지만, 우리 옛그림은 둘둘 말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펼칠 수 있어 참 유연하지요. 또 한가지, 옛그림의 포인트는 바로 여백입니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워야 하는 서양화와 달리 옛그림은 공간을 비워둔 덕분에 그림 속에서 바람도 불고, 나비도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최고의 화가는 적절한 곳을 잘 비우는 화가라는 설명은 마치 동양사상의 핵심을 요약한 명제처럼 들린다. 색채에 대한 설명도 명쾌하다.
“서양화는 총천연색을 쓰지만, 우리 수묵화는 먹빛 하나로 만물을 그립니다. 먹의 농담을 다르게 해 신기하게도 검은 빛 안에 무수한 색을 숨겨둔 듯한 느낌을 전합니다. 저는 수묵화는 쌀밥이라고 생각해요.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까요.”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린 겸재 정선의 작품 '구룡폭'.

 

옛그림 입문서 『그림 소담』·『고화정담』 펴내
호수공원 사랑하는 ‘일산신도시 원주민’

그가 몸담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잘 알려진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미술관으로,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수많은 고미술작품을 소장한 보고다. 탁현규 강사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적 옛그림들을 엄선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두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림 소담』과 『고화정담』은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듯 테마를 따라 각 장을 구성해 다양한 옛그림과 화가들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옛그림 입문자, 또는 교양독서를 즐기는 독자가 읽기 좋은 책입니다.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내 신선하고 재밌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사실 그는 1993년 일산으로 이사 온 후 지금까지 고양에서 살고 있는 ‘일산신도시 원주민’이기도 하다. 동네에서 즐겨 찾는 장소를 물으니, 대개의 일산주민처럼 그 역시 호수공원을 꼽는다.
“호수공원은 공간의 걸작입니다. 옛그림의 여백과 같은 존재랄까요. 호수공원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요. 세월이 축적돼 무르익은 아름다움이랄까요.”

호수공원과 아람누리, 그리고 정발산이 연결되는 일산의 중심축을 그는 “문화적 특구”라 평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람누리도서관에서 여는 강연이 다른 어느 곳에서의 강연보다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옛그림의 아름다움과 멋을 전하는 대중 강의를 지속할 생각입니다. 쉬우면서도 내용을 놓치지 않는 책도 꾸준히 쓸 계획이구요. 내년에도 더 많은 고양의 이웃들과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적 옛그림들을 엄선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그림 소담』과 『고화정담』.

 

단원 김홍도의 작품 '황묘농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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