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너무너무 공주』

『너무너무 공주』(허은미 글·서현 그림, 만만한책방)

 

[고양신문] “그래서 우리 아이는 중학교부터는 대안학교를 보낼까 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어느 초등학교에서 책읽기 교육을 마치고 난 뒤 학부모 한 분이 질문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한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현재를 기준으로, 부모의 시선을 기준으로 아이를 보지 말자. 어릴 때부터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야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을 갖도록 돕는 게 부모가 할 일이다. 그래서 책읽기가 중요하다.’ 뭐 이런 취지의 강의였다.
“그건 제가 아니고 아이에게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우리 부모 세대 트라우마는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열심히 가르쳐서 대학을 보내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대학을 나온 아이들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우리 세대 트라우마는 영어였다.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친 듯이 영어를 가르쳤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난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심지어 텍스트에 스마트폰을 대면 바로 번역이 되어 나오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도 멋진 직업으로 보였던 동시통역사는 ‘사라질 직업군’ 상위에 오르는 신세이다. 언제나 아이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아간다.
‘그럼 우리 아이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너무너무 공주는 너무너무 평범한 공주였다.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았고, 못되지도 착하지도 않았고 똑똑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런 공주를 보고 까막까치들은 떠들기 시작한다. “평범해 평범해. 얼굴도 평범해. 성격도 평범해. 머리도 평범해. 너무너무 평범해.” 공주를 너무 사랑한 임금님은 ‘저렇게 평범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없을 거다’ 걱정하기 시작하고, 임금님의 한숨소리를 들은 잉어는 수염 세 가닥을 내어주며 수염 하나에 소원이 하나씩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단, 소원을 빌 때마다 임금님은 늙고 쭈글쭈글해질 거라는 말과 함께.

임금님은 공주를 위해 자기가 늙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차례로 ‘예쁜 공주’가 되라 소원을 빌고 ‘착한 공주’가 되라 소원을 빈다. 그동안 임금님은 쭈글쭈글하게 늙어간다. 하지만, 착하고 예뻐진 공주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런 공주를 지켜보던 임금님은 마지막 소원을 빈다.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공주는 잘 웃고 즐거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공주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착하지도 못되지도, 멍청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았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간 것 같다. 그 옆에 늙고 쭈글쭈글해진 임금님만 달라져 있을 뿐.

과연 임금님의 세 번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그림책 『너무너무 공주』(허은미 글·서현 그림, 만만한책방)는 마지막까지 세 번째 소원이 뭐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 판단에 맡길 뿐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하지만, 그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고 어른들이 짜놓은 인생 설계도에 따라 모두가 딱 ‘스무 살’에 대학 가는 꿈을 꾼다. 없어질 지도 모르는 직업을 ‘장래 희망’이라 말하고, 직업으로 대변되는 장래 희망을 위해 행복하지 않은 현재를 살아간다. 예뻐져야 하고 착해져야 한다고 믿는 임금님의 소원은 공주를 공주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런 공주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상상해본다. 임금님의 마지막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공주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임금님과 함께 살게 되었을 테니 더 행복해졌을 거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는 공주이지만, 조금 헤매고 더디더라도 결국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 갈 거라 믿는다. 그것이 임금님 기준과 좀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떠한가. 공주는 임금님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박미숙 (책과 도서관 대표 /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더 이상 까막까치들 말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까막까치들은 원래 남의 말 하기 좋아하고 참견하기만 좋아한다. 까막까치들 말에 흔들린 탓에 임금님은 혼자 쭈글쭈글하게 늙고 아까운 잉어 수염만 낭비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자. 이제 우리도 소원을 빌 때다. 이미 잉어 수염 두 가닥은 벌써 써버리고 우리 손에는 한 가닥만 남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떤 마지막 소원을 빌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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