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참나무의 줄기와 잎. <사진=김윤용>

 
[고양신문] 산책길에 몸통 잘린 가로수를 만납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가로수 빈자리가 허전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속이 썩었습니다. 나무 밑동에는 이름 모를 버섯이 자라고 있습니다. 잘린 나무를 뽑고 새로 심은 가로수도 있지만 여전히 비어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가로수들이 잘려나간 공간은 더욱 텅 빈 느낌이 듭니다. 가지를 뻗어 그늘을 넓게 드리우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 등이 잘린 공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가로수 수종은 150여 종이라고 합니다. 배롱나무, 단풍나무, 곰솔, 메타세쿼이아, 복자기나무, 자작나무, 산수유나무, 벚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주목, 미루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산사나무, 참느릅나무, 양버즘나무….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가로수 수종만 공부해도 150종 나무를 알 수 있겠습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나무들을 가로수로 심어놓았지만 제주도는 먼나무, 구실잣밤나무, 야자수 등이 따스한 남국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성 나무들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소철, 녹나무, 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후피향나무, 다정큼나무, 후박나무 따위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경상남도는 구상나무, 충청북도는 귀룽나무, 전라남도는 멀구슬나무, 울산광역시는 아왜나무를 특별하게 가로수로 식재하기도 했습니다.

고양시 가로수 종이 궁금해서 고양시청 누리집을 검색했습니다. ‘가로수 조성 및 관리 현황표’가 눈에 보이는군요. 2013년 현재 통계이니 지금과는 다를 수 있겠습니다. 많이 심은 순서로 나무 종을 살펴봤습니다. 느티나무 1만8372, 은행나무 1만4713, 왕벚나무 8493, 벚나무 7557, 중국단풍 5653, 양버즘나무 4917, 회화나무 4738, 이팝나무 3501, 대왕참나무 1200…. 그밖에도 소나무, 산딸나무, 산수유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단풍나무, 계수나무, 때죽나무, 모감주나무, 목련, 목서, 배롱나무, 살구나무, 자귀나무 등도 가로수로 심어놓았습니다.

대왕참나무가 눈에 보입니다. 키가 20미터 이상 자라는 큰키나무인 대왕참나무는 키가 커서 ‘대왕’이란 이름을 얻은 듯합니다. 참나무과로 분류합니다. 잎은 5~7갈래로 깊게 갈라지고 끝은 뾰족합니다. 영어 이름은 핀 오크(pin oak)입니다. 대왕참나무는 잎이 넓어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하고, 도시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커서 가로수로 많이 심습니다. 일산에서도 대왕참나무 가로수를 볼 수 있습니다.
 

대왕참나무의 도토리 열매. <사진=김윤용>


대왕참나무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시상식 사진을 살피니 일장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 선수가 보입니다. 고개를 숙인 슬픈 표정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묘목 화분을 들고 있습니다. 손 선수가 쓴 관은 월계수 관이 아니라 대왕참나무 잎으로 만든 관입니다. 화분에 심은 나무도 월계수가 아닌 대왕참나무 어린 나무입니다. 이 화분 속 나무를 손 선수 모교인 양정고에 심었고, 그 나무가 우리나라에 심은 첫 번째 대왕참나무입니다. 서울 중구 만리동에 있던 양정고는 양천구 목동으로 학교를 옮겼으며 학교 부지는 현재 손기정체육공원입니다.

호수공원에는 제가 좋아하고 즐겨 찾는 공간이 몇 곳 있습니다. 계절 따라 기분 따라 다르긴 하지만 화장실전시관이 있는 주변은 특별한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이곳 주변 녹지에 호수공원에서 보기 힘든 나무 몇 종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버들나무, 안개나무, 서양산딸나무, 고로쇠나무…. 대왕참나무도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후 대왕참나무 잎으로 만든 관을 쓴 손기정 선수.


 

호수공원 화장실 전시관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대왕참나무. <사진=김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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