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지각대장 존』

 

[고양신문]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 하지만, 악어가 책가방을 물어서 늦고, 그 다음날에는 사자를 만나 늦고, 다리를 건너다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늦는다. 그런 존에게 선생님은 이 동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 그림책 『지각대장 존』(존 버닝햄 글·그림, 박상희 옮김, 비룡소)은 날마다 지각할 수밖에 없는 존과 존의 말이 거짓말이라 믿는 선생님 이야기다.

궁금해진다. 존의 말은 거짓말일까 아닐까? 책 속에 나오는 선생님은 존의 말이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에게 점점 무거운 벌을 준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존의 말을 믿을 것인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벌을 줄 것인가?

고민이다. 존의 말이 사실이라 하기엔 우리 동네에 악어와 사자가 나온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본 적도 없고, 있다면 큰일인데 그걸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존의 말은 거짓말이라고 판단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고, 심지어 상상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거짓말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내가 경험한 것.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결국 판단하는 사람 잣대가 기준이 되곤 한다.

이런 개인적 판단과 달리 사회적 판단에는 합리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생각해서 만든 것이 ‘법’이다. 우리는 그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준다. 그들의 판단을 믿는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악어나 사자는 나올 리 없다’라는 자의적 해석을 하거나 ‘선생님’같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 말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 잊혀진 판단이 하나 있다. 2013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한 사람이 ‘내란선동죄’로 9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인 사건이다. 당원들에게 한 강연 내용(녹취본)이 근거가 되었다. 당시 이 의원은 ‘내란선동 의도가 없었다’라고 주장했지만, ‘내란선동 의도가 없을 리 없다’라고 결정한 사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두고 해외 언론은 그 당시 한창 이슈였던 ‘국정원 댓글여론공작 사건 무마용’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고,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이 의원의 구속을 자의적 구금으로 규정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즉각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과 더불어 사법부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된 가장 나쁜 사례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지점이다. 만약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이 갇혀있다면, 이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가 9년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림책 『지각대장 존』 마지막에 학교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존은 드디어 학교에 지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장을 넘기면 선생님이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에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나온다. 구해 달라 외치는 선생님에게 존이 한 마디 한다.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권력 있는 선생님은 그동안 자신의 잣대로 존의 진실을 ‘거짓말’로 규정했고, 존은 그렇게 규정당한 ‘가짜 거짓말’을 선생님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참으로 통쾌한 마무리이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해서 존이 권력을 받아들이고 살게 된 거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선생님에 의해 ‘이 동네 천장에 고릴라가 살 리 없다’는 믿음이 생겨버린 존이 실제 눈에 보이는 사실조차 부정하게 된 것이라면?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권력의 판단만이 기준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의견은 분분했다. ‘어떻게 악어와 사자를 만나느냐, 그건 존의 상상이다.’ ‘존이 거짓말 한 거다.’ ‘아니다, 정말 악어와 사자를 만난 거다.’ 등등. 사실 그걸 판단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존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믿어주는 것이다. 함께 손을 잡고 학교에 같이 가주는 것이다. 다행히 악어와 사자, 파도를 만나지 않으면 지각하지 않아 좋은 것이고, 악어와 사자를 만나면 함께 위기를 극복해가면 될 일이다.

오늘도 존은 지각하지 않기 위해 동이 틀 무렵 길을 나서고 있다.

박미숙 (책과 도서관 대표 /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 덧붙임 : 이 책을 쓴 존 버닝햄은 82세 나이로 지난 1월 4일 하늘로 돌아갔다. 그가 없는 그림책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거짓말 같다. 영원한 어린이였던 그가 남긴 그림책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살기 나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안녕. 내 인생 최고의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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