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아직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가깝게 지내온 이웃이 오랜 세월 앓아온 지병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오십을 넘긴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십 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느라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조그만 건물 한 채를 물려받아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건물 앞마당에서 진돗개 크기의 중견 한 마리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는데 아침저녁으로 녀석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그런데 그가 입원을 하게 되면서 개의 처지가 아주 가엾게 되었다. 병원생활은 기약이 없는데 그를 대신해서 개를 돌봐줄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병세보다도 개를 더 걱정했다. 십 년간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개는 그에게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뜻밖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가 소유한 건물 1층엔 나와 이십 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선배가 십 년 동안 사무실을 임대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덕분에 선배는 건물주와 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선배가 선뜻 개를 돌보겠다고 나섰을 때 단순한 의리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배는 건물주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사람 돌보듯 개를 보살폈다. 매일매일 밥과 물을 챙기고, 산책도 거르지 않았다. 정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개의 산책을 부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개에게 말을 걸 때 보면 여간 다정다감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선배를 보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오랫동안 지켜봐온 선배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무심한 사람이었다. 지난 몇 년간 선배는 사무실 앞마당에 이십여 개의 상자텃밭을 일궈왔다. 그런데 이런저런 작물들을 심어만 놓고 아예 방치를 하다시피 했다. 땡볕 작렬하는 한여름에도 물 한 번 주는 법이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작물들은 시난고난 늘 몸살을 앓았다. 보다 못한 내가 제발 사흘에 한 번만이라도 물 좀 주라고 잔소리를 하면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태연히 대꾸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사람이 개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선배는 식물보다는 동물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에 나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집에도 열 살 넘은 애완견이 한 마리 있는데 나는 녀석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집에 개를 들인 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울며불며 매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 들어가면 반갑다고 꼬리치는 개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주고는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까 선배와 난 상이한 취미와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십 년 넘게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쌓아왔으면서도 하나의 단면만 보고 전체를 오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다니, 나라는 사람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

농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다들 제각각이다. 농사짓는다는 공통점 말고는 다들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섣불리 저러면 안 되는데 하고 선과 악의 판관처럼 행동하려 할 때가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올해에는 틀림과 다름을 지혜롭게 구분하며 사람들을 나처럼 대할 수 있을까. 해묵은 질문이지만 두고두고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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