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도시재생 선정지 일산2동

100년 세월 기차역·재래시장·초등학교…
옛 이야기 곳곳에 배어있는 정겨운 세월의 흔적

지난해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구 선정
낙후와 쇠락의 꼬리표 떼고 새로운 변화의 희망 싹터 

 

[고양신문] 일산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분당과 함께 아파트 숲이 늘어선 ‘신도시’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름이지만, 사실 1990년대 신도시가 건설되기 전부터 일산은 오랜 역사를 품은 마을이었다. 100여 년 전 경의선 철로가 놓이고, 일산역이 들어서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 바로 일산읍 중심가, 지금의 일산2동 지역이다.

하지만 허허벌판 농경지였던 들녘에 일산신도시가 건설되며 원래의 일산읍 중심가는 상대적으로 변화에 뒤처졌고, 신도시 주민들로부터 ‘오래되고 낡은 일산’이라는 뜻의 ‘구(舊)일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에 맞서 토박이 주민들은 ‘원(原)일산’, 또는 ‘본(本)일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요청하며 자부심과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래 된 것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가 물리적 낙후와 쇠락이라면, 다른 하나는 긴 시간의 퇴적이다. 이는 물건이나 집, 나아가 하나의 동네에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래된 마을의 낙후와 쇠락만을 염려해 새롭고 번듯하게 재개발 하는 것만이 능사인 양 여기곤 했지만, 최근에는 시간이 축적된 공간의 문화적·정서적 가치에 주목하며 오래된 마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도시재생, 공간재생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된 이유다.

일산역과 일산시장, 그리고 일산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일산2동 일대는 지난해 국토부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2017년에 선정된 화전, 원당보다는 1년 늦었지만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한 기대와 준비는 어느 곳보다도 빨랐던 지역이기도 하다. 옛 일산의 정취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함께 품고 있는 일산2동으로 마을 나들이를 떠나보자.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옛 일산역사. 지금은 일산역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00년 전, 만세소리 울려퍼진 일산역

마을나들이 출발지점은 경의중앙선 일산역이다. 10여 년 전 신축된 역사 창가에 서면 일산2동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일부가 고층 상가건물 신축부지에 편입되며 뭉텅 잘려나갔지만, 여전히 오래된 역전 읍내의 복잡한 풍경이 펼쳐진다.
옛 일산역사를 먼저 찾아가보자. 1933년 지어진 옛 일산역사는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곳으로, 특징적 형태와 보존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지금은 일산역전시관과 장난감도서관으로 사용되며,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건물 앞에는 100년 전 이 장소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펼쳐졌음을 알리는 표지판도 만날 수 있다.
 

일산시장 앞 상가. 오랜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맛집이 몇 곳 있다.

 
차 없는 거리와 전통5일장 이어볼까

다시 역전으로 돌아와 시장으로 이어진 상가거리를 걷는다. 2층, 또는 3층밖에 안 되는 전형적인 구시가지 상가건물들이 이어진다.
오래된 점포들 사이로 트렌디한 새 건물을 짓고 들어선 커피전문점이 두드러진다. 현재 주점과 식당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거리를 정비하고 외양을 깔끔하게 단장하면 분위기 있는 구도심 상가거리로 변신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하다. 주민들 사이에서 도시재생을 추진하며 이곳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는데, 충분히 고려해 봐도 좋을 듯하다.

상가거리를 지나 큰 길을 건너면 일산시장이다. 일산역 개통과 함께 인근의 사람과 물류가 몰려들어 만들어진 시장답게 역시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는다. 특히 3일과 8일, 장날에는 큰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노점행렬이 장관이다. 가까운 아파트단지는 물론, 전철을 이용해 인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도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도시재생 추진 과정에서 일산장이 지닌 매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의제일 것 같다.

오래된 가게와 새로 단장한 가게가 나란히 서 있는 거리 풍경.

 
주민들에게 교문 열어둔 일산초

옛 일산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장소는 일산초등학교다. 교문으로 들어서니 도심숲 정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학교 울타리를 따라 늘어선 커다란 향나무는 긴 그늘을 넓은 운동장에 드리운다. 아파트단지에 지어진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교정을 한 바퀴 도니 정겨운 풍경이 이어진다. 신사임당과 세종대왕 동상은 투박하고 낡은 모습 자체가 추억거리다. 한쪽에는 학교 설립 당시 부지를 기증한 독지가를 기리는 공덕비도 서 있다. 
1924년 일산공립보통학교로 출발한 일산초등학교는 오랜 세월 동안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둥지 역할을 했다. 고맙게도 일산초교 박창식 교장은 남다른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마을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일산초를 도시재생 사업의 큰 마을 자산으로 주저 없이 꼽는 이유다.

일산초 앞에는 낡은 기와집 몇 채가 서 있다. 한때는 학교 앞 문구점이나 분식집으로 한창 번성기를 누렸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중고자전거를 길게 펼쳐놓은 자전거포만이 학교 앞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한 어르신이 주인장을 찾아 중고자전거 가격을 흥정한다. 누군가가 버린 자전거도 잘 닦고 기름칠을 하면 다른 이에게 소중한 쓰임새를 얻는다는 단순한 이치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수많은 지역사회 선후배를 배출한 일산초등학교 건물.

 
도시재생사업 센터가 될 농협창고

비어 있는 농협창고로 발길을 옮겨보자. 이곳은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가 들어설 공간으로 점찍어둔 곳이다.
경의선 철로변에 자리하고 있어 이미 눈에 익혀둔 건물이지만, 가까이 가 보니 은근한 매력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투박하고 넓은 구조. 곡창지대였던 일산들녘의 양곡을 보관했던 창고답게 키도 크고, 몸집도 길고, 문도 넉넉하게 뚫렸다.
주변 환경도 양호하다. 창고 마당에서는 이런 저런 야외 행사 진행이 가능할 것 같고, 건물 뒤편으로는 제법 넓은 텃밭이 둘러싸고 있어 경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무척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다. 이곳 통장은 “매년 봄이면 농협창고 앞 수로에서 맹꽁이와 개구리 합창소리가 들려온다”고 귀띔한다. 맹꽁이는 환경부 지정 보호종이다. 잘 보존하면 마을 속 생태교육의 장으로도 가치를 발휘할 듯하다.   
 

일산2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중심 센터가 될 농협창고.


고양의 역사 품은 모두의 자산

아파트 단지 이면도로로 들어서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느티나무를 주변 공터를 중심으로 올 봄부터 플리마켓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마을공동체 와야누리가 지난해 일산역광장에서 진행했던 사업을 올해부터는 좀 더 지역주민들과 가까운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역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이런저런 동네 이야기가 오고 가야 제격이지 싶다.
옛 일산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나니 시장기가 돈다. 시장 안팎에는 손맛을 일찌감치 검증받은 오래된 식당들이 여럿이다. 맛있는 잔치국수를 선택한다. 뜨끈한 국물을 넘기니 뱃속도 마음속도 든든해진다.
나들이를 마치며 도시재생이라는 새 옷을 받아 든 옛 일산의 변신을 상상해본다. 오랜 역사를 다듬어 새로운 시절을 열고자 하는 바람은 다만 일산2동 주민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진화하기를 바라는 모든 이의 꿈이 아닐까.

 

일산역에서 일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상가거리.

  

일산초등학교 앞 자전거포. 한 어르신이 주인장과 중고 자전거를 흥정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앞 이면도로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경의중앙선 일산역사. 넓은 광장은 크고 작은 주민 행사를 열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양지역에서 가장 큰 장이 서는 일산역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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