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앞두고 만난 이웃>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 우리쌀 가공산업에 50년을 바친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과 아내 유순식씨가 세 남매(왼쪽부터 막내 병선·큰딸 영미·둘째딸 영주씨)와 자리를 함께했다.

칠갑농산의 역사는 곧 국내 쌀가공산업의 역사
쌀국수 메밀국수 등 숱한 가공식품 탄생시킨
집념 가득한 자서전 발간


[고양신문] 설이다. 설날 뜨끈한 떡국 한 그릇 먹으면 진짜 새해가 시작된다. 새해를 여는 시간이 누구보다 분주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설 차례상의 주인공, 떡국 떡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예전 같으면 동네 방앗간 골목이 수증기로 가득 찼지만, 이제 그 기능은 떡 공장으로 옮겨졌다. 하루 수십 톤의 떡이 생산된다.


꿋꿋한 중소기업 브랜드 ‘칠갑농산’

고양시 장항동에 자리잡고 있는 칠갑농산은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칠갑농산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쌀가공식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갑농산은 떡국떡을 대량 생산한 첫 기업이기도 하다. 청양공장과 파주공장에는 방앗간을 그대로 확대한 것 같은 떡 공장이 있다. 쌀을 씻고 불리고 분쇄하고 찌고, 떡으로 뽑아내는 기계장치가 쉼 없이 돌아가는데, 방앗간처럼 익숙하다. 다만 다른 점은 모든 장치들이 거대하는 것. 그냥 저 혼자 돌아가는 엄청나게 큰 방앗간을 상상하면 된다. 세상에 하나요,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이 기계는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이 직접 설계하고 설치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상상하게 되는 그런 기계다.

이 기계로 생산되는 떡국떡은 하루 50여톤. 수퍼에 있는 1㎏ 쌀떡을 기준으로 보면 5만 개가 생산된다. 설 대목에는 기계가 풀가동된다. 칠갑농산 떡을 먹어본 사람은 떡은 물론 다른 제품도 칠갑을 먼저 고르게 된다. 맛과 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대기업은 유통을 싹쓸이하면서 좀 괜찮은 중소기업이 있으면 노브랜드, 브랜드를 버리고 귀속할 것을 권한다. 대신 유통을 책임지겠다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브랜드를 포기하고 대기업의 한 공장이 됐다. 칠갑농산은 자사 브랜드를 꼿꼿하게 유지하며 성장하는 몇 안 되는 중소기업이다. 칠갑농산을 믿고 찾는 소비자층이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칠갑농산은 쌀떡뿐만아니라 쌀국수, 메밀국수, 메밀냉면, 감자수제비 등 수많은 히트상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이틀을 넘기지 못했던 곡물 가공식품의 유통기간을 한 달 넘게 연장시킨 주정침지법을 개발한 것도 이능구 회장이었다. 이능구 회장은 무늬만 농산물인 농산물가공산업에 뛰어들어 진짜 농산물가공상품을 만드는 데 인생을 걸었다.


직접 재배한 국산김치로 만든 만두

80년대 초반 밀로 떡을 만드는 시장에서 100% 쌀떡을 생산했고, 메밀 함량 5%도 안 되는 메밀국수의 메밀 함량을 30% 이상으로 높였다. 중국산 김치가 아니면 도저히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만두 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직접 담근 국산 김치로 승부를 걸었다. 수만 포기의 김장은 아내 유순식씨가 중심이 되어 직접 담근다. 그 비싸다는 흑미를 직접 재배해 흑미 메밀냉면을 만들기도 한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고지식한 이능구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어쩌면 자신감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능구 회장은 젊은 시절 자전거에 쌀떡을 싣고 다니며 사업을 익혔다. 거래처로 출근해 청소를 돕는 일부터 시작해 고객의 신뢰를 얻는 법을 배웠고, 밀떡이 대세인 시장에서 100% 쌀떡을 만들어 팔았더니 소비자가 99% 쌀떡을 선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업의 시작과 끝은 신뢰라는 것을 톡톡히 배웠다. 그 뒤로는 좋은 재료를 쓰고 좋은 상품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다. 동업자의 배신과 기계의 카피, 셀 수 없이 많은 실패, 질병의 고통에 시달렸지만 ‘신뢰의 원칙’을 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 회장은 최근 자신의 경영철학과 칠갑농산의 역사를 담은 자서전을 한 권 냈다. 『나는 쉬운 길을 선택한 적이 없다』는 제목의 자서전에는 이 신뢰의 원칙이 간결하고 재밌게 담겨있다.

칠갑농산은 이제 이능구 회장의 세 자녀가 이어가고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큰딸은 일찌감치 결합해 실험과 연구작업, 파주공장을 맡고 있다. 둘째 딸은 자력으로 유학을 떠나더니 미국 회계사는 물론 별의별 자격증을 다 따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능구 회장은 그렇게 반대한 유학을 떠나서 악착같이 자리잡는 모습을 보고 딸에게 본사 운영을 맡겼다. 막내 아들은 법학을 전공하고 꽤 큰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도 없었다. 가족과 쉴 수 있는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칠갑농산에 들어오라고 했다.

이능구 회장은 세 자녀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줄 수는 없지만 먹고사는 일에 관여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갖게 해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일하기를 원했고, 또 각자의 가정에서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더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인생의 고비, 뇌경색을 이긴 후

이능구 회장이 이렇게 가족과 함께 일하고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50대 초반 뇌경색으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가 찾아왔을 때, 반신불구가 되어 가장 절실한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에게 슬픔을 주고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악착같이 재활에 도전했고 3년 만에 다시 제대로 일어설 수 있었다. 질병의 고통을 겪은 후에는 모든 것이 건강중심, 가족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칠갑농산은 요즘 즉석 식품시장에 진입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즉석 떡국 ‘똑쌀떡국’ 등 기존의 제품과는 전혀 다른 품질의 즉석식품을 내놓고 있다. 흔히 즉석식품이라고 하면 몸에 좋지 않다는 점을 떠올리곤 하는데, 칠갑농산은 화학첨가물이 없는 자연식품을 재료로 쓰고 있다. 100% 쌀떡은 물론, 육수와 수프 역시 천연재료를 농축해 만든다.


쌀가공식품 육성, 농업 살리고 싶어

또 하나 칠갑농산이 도전하는 시장은 해외수출 시장이다. 미국과 동아시아,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대한민국 쌀가공식품을 수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이미 15개 국에 30여 품목을 수출하고 있고 수출량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능구 회장은 “한류문화에 세계인들이 환호하는 것처럼 한국의 쌀로 만든 먹거리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칠갑농산의 꿈”이라고 말했다.

이능구 회장의 이 꿈은 어릴 적 자란 농촌의 살길과 연결돼 있다. 너무나 배고픈 시절을 보내야 했던 70, 80대 세대에게 먹거리는 생명줄이었다. 농사는 곧 국민의 생명줄이라는 생각은 칠갑농산이 그 어렵고 더딘 농산물가공산업을 묵묵히 이어가는 뒷심이었다. 이능구 회장은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우리 농업을 포기하면 곧 국민의 생명줄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점점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다시 일으키려면 농산물가공식품의 활성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출은 쌀가공식품을 육성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칠갑농산이 선두에 서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우리 농업의 살길이며,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사명감. 세계 곳곳의 식탁에 고양의 칠갑농산 떡국이 올라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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