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식품업은 정직이 생명
시련이 커도 진실하면 소비자가 구해줍니다


[고양신문] 칠갑농산의 제품은 400종이 넘는다. 직접 생산한 제품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500여 가지 레시피를 꿰차고 있다. 모든 상품은 내가 직접 시제품을 만들고 먼저 식감테스트를 한다. 직원들이나 대리점 영업사원들이 가장 먼저 제품을 먹어보는데, 이 단계에서 맛있다는 반응이 나오면 시장에서도 잘 팔린다. 반응이 썰렁하면 여지없이 시장 반응도 썰렁하다. 먹거리라 반응이 빠르다. 모든 제품마다 최선을 다해 만들지만 소비자 평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오직 시장이 결정한다. 소비자 반응은 2~3개월이면 끝난다. 그 기간에 반품으로 돌아오면 죽는 거고, 계속 주문이 들어오면 사는 거다.


역대 최대의 히트상품을 꼽는다면.

꽤 되는데, 딱 하나만 꼽으라면 메밀국수다. 25년 전 첫 제품을 개발한 이후 단 한 번도 재료와 배합, 생산공법을 바꾼 적이 없다. 처음에는 좋은 재료를 쓰다가 나중에는 이윤에 밀려 재료를 변경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칠갑을 믿고 찾아준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메밀국수는 호텔주방장 등 음식업 전문가들이 먼저 믿고 쓴다. 25년 동안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효자상품이다.


최근 즉석식품 분야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즉석 떡국인 ‘똑쌀떡국’은 편의점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똑쌀떡국은 ‘똑소리 난다’는 충청도 사투리를 응용해 만든 이름인데, 처음엔 직원들이 이름이 어렵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내놓고 보니 반응이 너무 좋았다. 물론 브랜드보다는 제품 만족도가 좋은 건데, 브랜드가 재밌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똑쌀떡국은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사골국물 떡국을 맛볼 수 있다. 핵심은 부드러운 떡맛이다. 집에서 끓인 떡국보다 부드럽고 졸깃하다. 칠갑의 생산기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제품이다.


칠갑농산 감자수제비는 누구나 알고 있다. 진짜 손으로 빚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산하나.

수제비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바로 보들보들해지고, 손으로 직접 빚은 것처럼, 뚜걱뚜걱한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어 더 맛있게 느껴진다. 기계 마지막 단계에 마치 손으로 빚은 듯한 모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금형을 설치했다.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갔다. 우리가 처음 수제비를 내놓은 후 다른 기업들이 우리 기계를 모방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수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한 기계를 단숨에 모방해가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렇지만 어느 기업도 칠갑 수제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칠갑 감자수제비는 실제로 감자 함유량이 30%가 넘는다. 재료가 비싸기도 하지만 성분배합이 어려워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모양은 따라 만들어도 재료와 기술은 모방하지 못했다. 수제비는 메밀국수와 더불어 칠갑을 대표하는 히트상품이다.


현장에서는 호랑이가 되신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운 건가.

제품이라는 것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제조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작은 실수만 생겨도 수천만원씩 버리게 된다. 그때마다 연수시킨다는 생각으로 감내한다. 다만 적당히 혼내는 일은 없다. 눈물이 나도록 혼낸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돈의 문제였다면 나도 그렇게 호되게 혼낼 수 없다.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우리가 만든 먹거리가 누군가의 건강을 위협한다면 이건 사업이 아니라 범죄가 된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기업의 숙명이기도 하다. 오래 일한 직원들은 내가 왜 호랑이처럼 변하는지 이제 안다. 현장을 나오면 금방 풀린다.


50대 초반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때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힘들었던 때라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병원에서는 6개월을 못 간다고 했다. 동업자의 배신과 세무조사, 청양 공장 신축 등 큰 문제가 이중삼중으로 겹쳤을 때 병이 찾아왔다. 다른 모든 것을 접고 재활에 전념했다. 주로 산을 오르는 운동에 집중했는데, 처음에는 기다시피 북한산과 도봉산에 올랐다. 얼마 후에는 지팡이를 짚고 올랐고, 3년 후에는 지팡이 없이 거뜬히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매일매일 지독한 인내와 도전의 시간을 보냈다. 가장 힘든 시간이었고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병에는 장사 없다고, 한번 병이 들면 많은 것을 잃게 되고 가족들에게도 부담을 주게 된다. 가족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번 병이 들고 나니 건강을 최고의 목표로 두게 되더라. 나는 혈관병이 걸렸던 몸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요즘도 꾸준히 운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개발한 스트레칭 동작을 동작별로 200회 반복하고, 거의 매일 새벽 호수공원을 두 바퀴씩 걷는다. 골프도 정기적으로 치는데, 필드는 꼭 걸어서 다닌다. 그래야 운동이 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약골이었는데 꾸준히 운동을 하다보니, 지금은 더 건강해졌다.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아팠을 때의 심정을 생각하면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성장시켜온 기업인데, 지금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듣고 싶다. 

후대들이 칠갑농산을 잘 성장시켜 나갔으면 하는 것이 내 꿈이다. 기업을 키우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당장 주식공모도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주주가 생기면 수익을 챙겨줘야 한다. 내 의지나 기업의 철학과는 달리 이윤추구가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린다. 지금 칠갑농산은 은행 빚도 없고 직원 월급도 잘 준다. 복지도 남부럽지 않게 챙겨갈 계획이다. 몸에 좋은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최근 자서전을 냈는데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자서전을 한번 써보라고 권할 때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긴 시간, 그 긴 사연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막막했고, 막상 책을 내도 누가 내 이야기를 눈여겨볼까 싶었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고 결심한 이유는 칠갑농산의 과거와 오늘을 정리하고 싶었고, 국내 쌀가공산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책을 내고 보니 후련하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구구한 사연은 생략하고, 칠갑농산 위주로 스토리를 전개했던 것이 오히려 좋았다. 분량이 짧고 상품 위주의 스토리가 많아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보다 칠갑농산의 직원들과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나고 보니 가장 크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나.

고통이, 시련이 없었다면 내가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막상 시련이 닥치면 이제 끝나는구나 싶지만, 지나고 나면 그 시련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시련을 이겨야 한다는 당당함은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인데, 나의 경우 내가 진실하게 정면 도전하면 누구보다 소비자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소비자는 참으로 순수하고 순진하다. 그래서 잘 속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속이는 기업과 진실한 기업은 확연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다. 한번 진실을 확인하면 정말 큰 힘이 되어준다.


고양신문 독자 중에도 고객이 있을 텐데,  고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다. 광고도 제대로 안 하는 칠갑농산을 선택해주시고, 자꾸 주변에 알려주셔서 칠갑농산이 오늘까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큰 시련이 있어도 넘길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소비자의 힘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가 선택해주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소비자들께 한 점 부끄럼 없는 정직한 제품을 만들겠다. 화학첨가물 없는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보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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