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유정길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고양신문] 필자가 아프가니스탄에 2001년부터 4년간 긴급구호활동을 할 당시, 그곳은 모든 유엔기구, 그리고 KOICA와 USAID등 OECD 국가산하의 해외개발지원기구 사무국 대부분이 들어와 있었다. 이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 개발NGO들 수백개가 들어와 지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단체를 비롯해 한국 NGO들도 6~7개가 들어와 있었다. 대부분 이들은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기반으로 가난한 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이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의식의 차이였다.

이들 대부분이 지원받는 나라가 모두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우리가 도와줄 테니, 어서 빨리 우리나라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것은 이들 나라의 지원목표가 ‘자기들 나라처럼 되는 것’, 더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풍요롭게 사는 것’이 모델이며 궁극의 귀결이라고 은연중에 확신하며 지원한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과연 이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치 챘는가?

한정된 지구자원 속에 5%의 미국 인구가 전 세계의 32%의 자원을 소비하는 발전을 모든 인류가 누릴 수는 없다.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 20%의 소수의 잘사는 국가들이 82%의 자원소비를 하는 것을 발전, 성장, 선진국이라고 평가하는 바로 그 세계인식이 오늘날 인류를 절멸로 향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기후변화 온난화 등의 지구적 위기가 선진국의 풍요중심의 성장 패러다임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발전과 성장은 ‘자원은 무한한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라는 걸 깨달았으며, 이대로 가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지속불(不)가능한 발전’으로 위기를 향해 치닫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당연히 여겨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중심의 GDP, GNP라는 발전기준은 잘못이라는 점을 200년이 지난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직선적이며 상승적인 무한성장주의의 미국적 생활양식은 인류를 유토피아가 아니라 패망의 디스토피아로 인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래서 이제껏 지속된 과거, 지속불가능한 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분명한 단절을 강제하는 메시지이다. 적게 소비하면서 더욱 풍성한 공동체적 관계성으로 행복과 발전의 패러다임적인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벽수준의 변혁을 강제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본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는 노르웨이의 여성 총리인 브루틀란트가 1987년 유엔에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 최초로 제안된 내용이었다. 1992년에 리우환경회의에서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인류미래를 위한 행동강령’(Agenda 21)을 선포하여 국가뿐 아니라 기초자치체, 광역자치체 등 단위에서 모두 Agenda 21을 만들고 수행하게 하여 구체적인 변혁을 이루게 하려는 설계도였다.

그러나 사랑이나 평화라는 좋은 말일수록 오염되어 전쟁이나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에 의해 많이 사용되듯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도 이러한 단절과 전환, 변혁의 용어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최근 그저 이제껏 살아온 그대로의 방식을 유지하며 ‘이대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싶다’는 나른한 생각 수준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달리 전환의 메시지는 소멸되고 현재 상태의 지속성만을 강조하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새천년 개발목표(MDGs)는 UN에서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국제사회의 발전 목표였다. 이후 2015년부터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로 바꾸어 인류의 보편적 문제(빈곤·질병·교육·성평등·난민·분쟁 등) 와 지구 환경문제(기후변화·에너지·환경오염·물·생물다양성 등), 경제 사회문제(기술·주거·노사·고용·생산·소비·사회구조·법·대내외 경제)를 2030년까지 17가지 주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실행하는 지역정치나 중앙정치인, 또는 환경단체나 개발협력단체들의 철학에도 ‘지속가능성 SD’는 다소 수사일 뿐, 성장과 풍요를 지향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인류적 단절과 전환의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고 그저 하나의 트렌드로 패션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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