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노무사의 <인사노무칼럼>

김기홍 노무법인 터전 대표

[고양신문] 우리말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로 번역되는 이 로마법의 원칙은 수험시절 필자 본인에게 단순하지만 강한 울림을 준 라틴어 격언이다. 최근 이 말에 대해 다시 곱씹어볼 기회가 있었다. 약 십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인도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기 위해 직접 인도에 가서 요리사 아홉 명을 데리고 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요리사들 사이에 약속한 사항은 당시 작성한 영문계약서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 근로시간 :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 임금 : 미화로 월 900달러와 한국에 체류하며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 일체
- 생활비 일체 : 숙박비, 식비, 부식비, 수도・전기・가스요금, 인터넷사용료, 유니폼, 항공료(가족 포함), 교육비, 잡동사니 등

십년 넘게 사업주 B는 위 계약의 내용을 준수하였고, 그 요리사 중 한 명인 A도 만족하며 근무했다. A가 집으로 보낸 900불은 인도에서 의사의 평균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므로 그의 아내는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재테크를 할 수 있었다. B와 A의 10년 전 약속은 이렇게 잘 지켜진 셈이다. 

그런데 최근 A는 천식이 심해져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어 퇴사하게 되었는데 예상 밖으로 고용노동부에 사업주를 상대로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 위반과 매일 휴게시간도 없이 계속 일하였기 때문에 연장근무수당이 추가로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A의 대리인에 의해 산출된 최근 3년간 미지급된 금액이 3,000만원에 육박한다. 

필자는 A에게 지급된 월급은 고국으로 송금한 900달러와 숙박, 식사 등 기본 생활비를 포함하여 계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A의 손을 들어줬다. 

10년 전 작성한 계약서에 임금을 ‘900달러와 생활비 일체’라고 적는 대신 최저임금 이상 월급을 특정하고, 그 금액에서 숙박비, 식대를 공제한 후 인도로 송금하였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최저임금법의 보호대상인 A와 그 가족의 생활상을 보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법의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A가 근무했던 B의 매장은 매출부진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A는 인도에서 부자가 되었지만,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3,000만원을 더 지급해야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약속을 지켰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하나 더 약속을 계약서에 잘 표시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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