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영의 퇴근길 씨네마> ‘District 9’(감독 닐 블롬캠프, 2009년작)

‘District 9’(감독 닐 블롬캠프, 2009년작)


[고양신문] 어느 날 갑자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도시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외계 물체가 나타난다. 인간과 아무런 교신도 하지 않은 채 상공 위에 떠있던 미확인물체 안으로 Multi-National United(초국적연합, 이하 MNU)라는 국제군수업체가 들어가 보니 영양실조로 외계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렇게 지구인들은 정체 모를 생명체들과 익숙하지는 않지만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외계인 지도자는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고 공격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히지만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끊임없이 표출하고 혹시나 당할 수 있는 위협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한다. MNU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외계인을 단숨에 제거하고 싶지만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적이거나 반인륜적인 행위에는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외계인들을 ‘디스트릭트 9’이라는 공간에 강제수용 한 후, 그들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2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인간과 외계인이 공존하던 요하네스버그에는 초기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려던 외계인과 인간 지도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차별 정책들이 만들어진다. 외계인에 대한 차별은 레스토랑, 화장실 같은 공간의 분리에서 시작됐고 외계인을 비하하고 모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호칭들을 통용했다. 오랜 세월 삼엄한 통제를 받은 외계인은 슬럼화 된 수용소와 가난 그리고 높아져만 가는 범죄율 등 갖은 사회적 문제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외계인들에게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 자신의 집에서 무조건 떠나라는 무책임한 명령을 내리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격적인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을 향한 인간의 대화나 행동에서 외계인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식은 그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는다.

외계인을 강제로 이주하는 MNU 프로젝트의 관리자이자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이며 윤리적으로도 착한 비커스 팀장 역시 외계인을 대하는 태도는 여느 인간과 동일하다. 스스로가 절대 외계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적 고려가 있을 하등의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외계인과 인간은 영원히 분리되어 있고 비커스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외계인을 차별할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 비커스는 어떤 외계 물체에 노출된다.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비커스를 통해 열린 것이다.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이제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은 무한한 두려움으로 변해 인간을 덮친다. 한 순간에 비커스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자신을 받아줄 유일한 곳으로 몸을 숨긴다. 그곳은 외계인들의 피난처, 자신이 강제 철거를 맡았던 ‘디스트릭트 9’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비커스는 유전자 변이로부터 자신을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는 구원자를 만난다.

비커스는 백신을 가진 외계인과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give-and-take) 관계를 맺는다. 외계인도 인간으로부터 탈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비커스를 통해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을 얻으면 곧 ‘인간’으로 돌아가는 비커스에게 외계인은 여전히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이다. 그러나 곧 비커스에게 수배령이 내려지고 존재적 동질감을 공유하던 인간은 이제 비커스를 제거하려는 ‘적’이 된다. 오히려 물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외계인이 자신의 곁을 지키는 동료가 되고 비커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상호 교환적 관계로 시작했던 비커스와 외계인의 관계가 더 이상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하지만 오히려 깨지지 않고 단단해진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서 조금씩 벗어나 현실에 직면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수용하는 나가는 비커스를 만난다.

절대 나는 상대방처럼 될 수 없다는 생각이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다.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기나긴 차별정책은 외계인의 슬럼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로 만들었고 인간이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강한 신념도 균열은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비커스가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시작한 때부터다. 비커스에게 도래한 변화의 가능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결국 현실을 서서히 인정해야만 했다. 그전까지는 인간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않았던 존재와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런 상대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강도영 빅퍼즐문화연구소 소장

이 모든 과정은 자의든 타의든 비커스가 경험한 변화가 없었다면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커스는 인간의 자리에서 외계인의 자리를 경험함으로서 절대로 공감할 수 없던 타인과 공감과 이해의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비커스도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영화 중반까지 그저 원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만을 원했지만 자신에게 도래한 변화를 통해 타자의 입장에 서보게 되고 그들이 경험하는 온갖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비커스의 경험처럼 타자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공감하고 결국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자리의 우리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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