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작품 읽기’ 오픈강좌

아들 최윤구 평론가 진행
4월 10일 한양문고서 시작

 

'최인훈 작품읽기'를 진행중인 최윤구 평론가.


[고양신문] 지난해 7월에 타계한 최인훈 작가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깊이 읽기 위한 첫 모임을 통해서다. 지난달 27일 오전,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최인훈 작품 읽기-광장에서 화두까지’ 오픈 강좌가 열렸다. 모임 리더로는 최인훈 작가의 아들 최윤구 평론가가 참여했다. 서점 관계자는 “올 한 해 최인훈 작가를 기리며, 그의 작품을 순수한 독자의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며 모임 취지를 설명했다.

문학박사이자 음악칼럼니스트인 최윤구 평론가는 “단순히 아들로서 추모를 위해 이 강연을 준비했다기보다는, 문학을 사랑하고 공부했던 독자나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최윤구씨에 따르면 『광장』은 성격이 독특한 책이다. 영문학자 김욱동이 쓴 『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처럼 읽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 책이 나와 있을 정도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최윤구 평론가는 작품에 대한 신선한 접근법으로 광장의 서문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가 왜 이 책을 쓰게 됐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 책을 쓸 때 어떤 책의 도움을 받았는지에 대해 들어 있는, 책에 대한 가장 좋은 안내는 서문이기 때문입니다.”

광장은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개정을 했고, 그때마다 작가의 목소리가 담긴 서문이 실려 있다. 1960년 처음 초판본 서문은 이렇다. “‘메시아’가 왔다는 2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중략)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최 평론가는 이 문장에 대해 “주체적인 행위를 행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만나는 것은 결국 운명이다.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슬픔을 보여준다”면서 “최인훈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슬픔이라는 점을 기억해줄 것”을 당부했다.

광장 속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전도가 유망한 젊고 재능 있고 똑똑한 젊은이가 고국을 떠나는가, 왜 용감하게 살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는가” 등이다. 1961년 서문에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최 평론가는 이것이 모든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라고 말한다. 위대한 문학은 늘 영웅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패배한 보통사람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1973년 서문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소설가는 인생을 모르면서도 주인공을 삶의 깊이로 내려 보내야 한다. (중략) 이명준, 나의 친구여. 그제나 이제나 다름없는 나의 우정을 받아주기를. 그리고 고이 잠들라.”
 

최인훈 전작 읽기 오픈 강좌 모습

 
이어 그는 소설 속에서 이명준이 고고학자 정 선생을 찾아가 남한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정 선생이 베토벤의 음악을 듣자고 제안하는 대목에 대해 설명했다. 소설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작품의 따듯함을 담은 비장의 카드가 바로 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부수는 듯한 비바람 대신에, 나긋나긋하고 환한 가락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로맨스’다. 몰리고 있던 분풀이를 마음껏 했다는 듯 일부러 딴 데를 보면서, 정 선생은 장난꾸러기처럼 허리를 한 번 젖혀 보인다.”

음악칼럼니스트인 최씨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베토벤의 로망스에 대한 어떤 해설서를 읽어도 이처럼 문학적인 해설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 고전음악에 관한 한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전문적인데도 말이다. 이와 함께 최 작가 생전에 둘이 즐겨들었던 로망스를 들려줬다. 러시아의 인민예술가로 불리는 다비드 오이스트라가 연주한 곡으로, 10여 분간 청중들은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광장의 서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라는 문장이 “굉장히 시적이고, 매우 밝게 빛나는 명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앞으로 이 강좌에서는 작가의 소설뿐만이 아니라, 희곡과 에세이, 중·단편 소설도 읽을 예정이다. 최씨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최인훈의 작품들, 특히 단편도 좋아한다”며, “잘 모르는 분들에게 그의 작품을 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강좌는 총 3회 시즌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시즌Ⅰ ‘KNOWN 최인훈’은 『광장』과 잘 알려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함께 읽는다. ▲시즌Ⅱ ‘UNKNOWN 최인훈’은 중·단편과 희곡 작품들을 살펴본다. ▲시즌Ⅲ ‘ESSAYIST 최인훈’은 작가의 에세이와 독후감 등 다양한 글을 만난다. 각각의 시즌은 2개월 동안 2주에 한번 씩 진행된다. 오는 10일에 『광장』으로 첫 강의를 시작한다. 강독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해당 책을 최신판으로 준비하는 게 좋다. 문의 031-919-6144

 

최윤구 평론가와 어머니 원영희씨, 아내 하윤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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