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가시초가를 지키듯 서 있는 음나무. <사진=김윤용>

[고양신문] 따스한 봄입니다. 노란 산수유와 생강나무, 개나리꽃이 봄봄합니다. 보랏빛 진달래꽃도 만개했습니다. 며칠 지나면 호수공원 철쭉과 벚꽃도 활짝 펴 장관을 이루겠지요. 봄꽃과 새순처럼 움츠러들었던 우리 몸도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곱고 밝은 봄꽃에 마음이 설렙니다. 하지만 식용이 가능한 나무 새순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겨우내 묵나물이나 신김치로 버텨냈던 우리 몸이 푸릇푸릇한 기운을 받길 원해서겠지요. 쌉쌀하면서도 향기가 있는 소박하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인 나무 새순. 봄이 오면 기다려지는 음식입니다. 일 옻순, 이 엄나무순, 삼 두릅순, 사 오갈피순. 사람들마다 기호가 달라서 순위를 매기기 어렵지만, 허영만 화백은 만화 『식객』에서 옻순을 첫 순위로 치더군요.

가시를 많이 달고 있는 음나무 가지. <사진=김윤용>

옻나무 순은 여전히 먹기 힘들지만(새순 채취 시기가 사나흘이랍니다), 엄나무순, 두릅순, 오가피순은 봄철마다 찾아먹는 그리운 먹을거리입니다. 나무 새순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습니다. 또는 갈색으로 구운 삼겹살 쌈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쌉싸름하면서 신선달콤한 그 맛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더욱 감칠맛이 나겠지요. 이때쯤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봄맛입니다.

옻나무를 한자어로 칠(桼)이라 합니다. 옛날 옻 수액은 최고의 도료였습니다. 자연산 페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옻나무 이름도 (옻)칠하다란 뜻에서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옻 수액은 방수·방습·방충·방균 효과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수저, 그릇, 가구 등에 옻칠을 했습니다. 게다가 옻칠을 한 물건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으며 은은한 색과 향이 있어 옻 수액은 예로부터 귀중한 도료였습니다. 옻나무는 옻나무과 붉나무속에 들며 홀수깃꼴겹잎입니다. 원뿔모양 꽃차례에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옻나무 가지와 잎. <사진=김윤용>

옻나무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호수공원 메타세쿼이아 산책길 중간쯤에 샛문이 있는데요, 샛문을 빠져나가면 주말농장 텃밭이 있습니다. 이곳 뒤쪽 포장도로를 조금 지나면 조립식 건물이 나옵니다. 아마도 옻칠 공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 앞에 옻나무들이 무리로 자라고 있습니다. 옻나무 새순과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옻나무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나무껍질에 가로로 상처를 낸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옻은 사람 피부에 발진을 일으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엄나무와 두릅나무는 동물에게 새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가시라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가시 때문에 새순을 온전히 빼앗기지 않는 게지요. 어린 나무는 가시를 발달시키지만 큰 키로 자라나면 가시가 사라집니다.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라고 부릅니다.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온 이름으로 흔히 엄나무라고 부릅니다. 키가 25미터까지 자라는 두릅나무과 큰키나무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가시가 발달한 나무가 사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辟邪)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집 안에 심거나 대문 위 처마 밑에 음나무 가지를 걸어 놓기도 했습니다. 호수공원 사자상에서 아랫말산을 10여 미터 오르면 회화나무 옆에 굵고 크게 자란 음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높게 자란 탓에 가시가 없습니다. 새순을 보호할 자신이 생긴 탓일 것입니다. 정발산동 밤가시초가 대문 처마 아래에는 사나운 가시를 품고 있는 음나무 가지묶음이 걸려 있고, 초가집 옆에는 가시가 발달한 음나무가 초가집을 지키듯 서 있습니다.
 

수액을 채취한 흔적이 남아있는 옻나무 몸통. <사진=김윤용>

 

봄 기운이 오르기 시작한 호수공원 풍경(3월 24일). <사진=김윤용>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