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만30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자궁경부암 무료검진대상이라는 안내 때문이었다. 만30세 이상의 여성들만 대상이었던 검진은 2016년이 되어서야 만20세 이상의 여성까지 확대되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만30세 이상이 되는 해와 바뀐 시행령 적용으로 검진 받을 수 있는 해가 같았다. 어찌됐든 국가가 검진을 이유로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안내하기 전에는 한 번도 산부인과에 가지 않은 셈이다.

자궁경부암 무료검진대상이 확대되었지만, 20대의 검진비율은 2018년을 기준 약 20%로 여전히 낮다. 건강에 대한 과신, 정책홍보의 부족, 주거의 불안정성 등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정책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산부인과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 역시 큰 이유였을 것이다. 산부인과에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성의 몸은 몸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언제나 ‘출산’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국가는 산아정책으로 여성들에게 임신중절을 강요했으며, 장애와 질병 등을 이유로 재생산의 권리를 앗아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출산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여성의 몸은 여성에게 순결할 것을 사회문화적으로 강요했으며, 결혼한 여성만이 산부인과에 떳떳하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벽을 오랫동안 갖게 했다.

산부인과에 대한 편견은 현존했던 ‘낙태죄’의 영향도 컸다. 임신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의한 처벌로 여성에게 강제되었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임신중절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행위인지를 강조했고, 임신중절이라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순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낙태죄’는 여성들에게 ‘순결하지 못함’ 혹은 ‘모성이 없음’ 등의 낙인을 찍고 여성들을 사회문화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도구로 기능했다.

여성들은 오로지 여성의 몸에 대해서만 통제하고 있는 국가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더 이상 국가의 인구정책을 위한 도구로 쓰이길 원치 않는다고, 내 몸에 대한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 국가의 책임은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아닌,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음을 강조했다.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 ‘헌법불일치’로 응답했다.

몇 년째 태아의 생명권이 먼저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먼저냐를 물었던 낡은 질문은 이제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닌 동등한 시민이며, 임신-출산-양육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있음을 확인했다. 또,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형벌 때문이 아닌 자신의 삶을 가장 중심에 놓고 숙고할 수 있게 되었다.

신지혜 노동당 대표

‘낙태죄’가 폐지된 세상은 단지 임신중지가 ‘비범죄화’ 되었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낙태죄’가 폐지된 새로운 사회는 성교육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적인 요소들에 여성들의 자기결정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면 수정이 필요함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는 이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으며 나의 건강을 살필 수 있다는 것, 더 많은 여성들이 더 일찍 자신의 몸을 살필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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