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생 현장실습 실태

전공 무관한 분야에 현장실습
실습 버텨도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환경개선, 책임 강화해야”
신일비즈니스고 노동인권동아리
실습 앞서 노동인권교육 나서

 
[고양신문] 고양시 특성화고를 졸업한 유나연씨는 2년 전 조기취업의 부푼 꿈을 안고 현장실습을 갔지만 이내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식비가 포함된 수습임금은 고작 120만원. 반면 유씨의 노동 강도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제가 원래 디자인 관련 전공인데 그쪽 업계에서는 취업의뢰가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취업이 급했기 때문에 일단 아무 업체나 지원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취업의뢰서에 적힌 업무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어요.”  

유씨가 취업한 곳은 노인복지용구 및 의료기기 판매업체였다. 사무직으로 소개받는 것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휠체어, 안전손잡이, 목욕의자 등 무게가 꽤 나가는 상품들을 나르는 물류업무까지 맡겼다. 무늬만 사무직이고 사실상 모든 잡무를 다 도맡아 했던 것. 직무교육의 연장선상이라던 현장실습의 애초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근무조건도 엉망이었다. 근무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일쑤였으며 사장의 무언의 압박으로 인해 연월차는 물론 병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심지어 회식자리에서는 미성년자였던 유씨에게 술을 강요하기도 했다. 참다못해 담임교사에게 “실습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학교 측은 회사직인이 찍힌 출근부와 실습일지를 제출해야 복교가 가능하다고 했고 업체 측은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퇴사시킬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결국 유씨는 A형 독감에 걸리고 회사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야 겨우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마저도 업체 측이 서류작성을 핑계로 계속 업무를 시킨 탓에 나중에는 위조한 회사직인을 찍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이었다. 2017년 11월 19일 제주의 한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이민호군이 사망한 사건이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던 즈음이다.   

현장실습 이후에도 불안정한 일자리
이처럼 특성화고에서 나타나는 현장실습의 문제점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특성화고 졸업생 출신 박세현(가명)씨는 “몇몇 기업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희 때는 모 대기업에서 현장실습생을 모집하려고 오기도 했어요. 와서 설명하기로는 인턴기간을 거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간 친구들 중에 그런 경우는 없어요. 호텔에 입점한 계열사 음식점에서 채용했는데 가보면 서빙하고 주방보조 하는 업무가 전부였죠. 언제든지 쓰다 버릴 수 있는 그런 일이요.”

현장실습을 거치고 나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은 사실상 바늘구멍 수준이다. 박씨가 특성화고를 다녔던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직종은 은행이었다. 취직만 된다면 정규직이 보장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 뽑혀 갔던 2명은 결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 명은 실적부진으로 해고를 통보받았고 나머지 한 명 또한 과중한 업무와 접대문화에 못 이겨 그만뒀다. 

일산의 한 특성화고에 근무하는 교사는 “현재 나와 있는 특성화고 취업률 통계에는 허수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불안정한 비정규직인데다가 알바형태의 일까지 모두 취업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해당 교사는 “작년에 현장실습을 통해 취직했던 한 학생은 회사가 망해서 현재 실직상태에 놓였다”며 “이처럼 설사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지역고졸출신 공무원 채용분야가 마련되긴 했지만 한 학교에서 추천할 수 있는 인원이 극소수라 경쟁률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7년 현장실습생들의 연이은 사망사고로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교육부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학생들을 조기 취업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실습 지도와 안전관리 등 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실습제도로 수정되면서 이제 기업은 직무능력 등급에 맞춰 최장 12주 동안 학생들을 교육해야만 채용할 수 있게 바뀌었다.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특성화고 학생을 채용하려는 회사가 줄어들었다. 실제로 작년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률은 65.1%로 전년보다 9.8% 하락했다. 

취업전선에서 낙오한 특성화고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저임금 고노동의 일자리에 몰려들게 된다. 박세현씨는 “(현장실습에서)그만둔 친구들은 대부분 보험설계사나 배달대행, 신발판매 등 전공과 상관없는 판매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안사정 등 다양한 이유로 당장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일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비싼 등록금과 학업성취도 문제 때문에 자퇴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이렇게 일을 경험하다보니 대부분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정작 이력서에 쓸 수 없는 경력들만 늘어나는 거죠. 자기계발도 힘들고 인생계획을 세울 겨를도 없다보니 다들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잇다른 사고 이후 교육부에서 조기취업이 아닌 학습중심의 현장실습제도 개편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장실습 사업장에 대한 노동환경 개선 및 관리책임 강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2017년 경기북부노동센터에서 진행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점 개선방향 토론회 모습.

현장실습 앞두고 노동교육 강화해야
작년 9월 고양시에서 열린 청소년노동권 토론회에서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전 위원장은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의 근본적 해결방안은 현장실습 사업장에 대한 노동환경개선과 관리책임 강화”라며 “교육부의 대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은아 전 위원장은 현장실습생 노동환경 개선 방안으로 ▲노동환경 전수조사 실시 및 특별근로관리감독 ▲교육부-노동부-지자체가 결합한 협의회 마련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인권 특별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현장실습을 앞둔 특성화고 졸업생들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고양시 특성화고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신일비즈니스고 곽미예 교사는 올해 10명의 학생들과 함께 노동인권동아리를 처음 만들었다. 곽 교사는 “특성화고 교사로서 지금까지 노동인권 문제에 무관심했던 게 부끄러웠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하게 됐다”며 “졸업 전에 적어도 이런 교육을 배우고 나가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동아리 결성이유를 밝혔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사실 동아리 회원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온 학생들은 없었다. 타 동아리에서 밀려왔거나 사람이 모자라 폐강된 동아리에서 넘어온 학생들이 전부였다. 당연히 노동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질 턱이 없었다.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동아리 첫 행사로 마련한 영화상영에서였다. 곽미예 교사는 “영화 ‘카트’를 보여줬는데 끝나고 다들 반응이 좋았다. 소감발표에도 진지하게 임했고 비로소 노동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시험이 끝나면 최근 서울에 문을 연 전태일 기념관에도 같이 다녀오고 연말에는 노동인권과 관련된 캠페인도 함께 해볼 생각이다. 곽 교사는 “그전까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이런 문제들을 외면해왔는데 이제는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경험을 통해 나중에 부당한 대우에 대항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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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졸업생 58% 부당대우 받아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과정에서 발생한 김군의 사망사고부터 이듬해 연이어 터진 현장실습생 사망사고까지. 매년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고소식이 전해지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와 제도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졸업 이후 이들이 처하는 노동현실에 대한 실태조사는 여전히 전무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에서는 지난 2월 경기도 내 특성화고 졸업생 300명(남녀 각 1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취업준비자 56명을 제외한 244명 중 212명(86.9%)이 비정규직이었으며 61명(25%)은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인 176명(58.7%)이 취업현장에서 부당 대우를 받았다고 답변한 부분이다. 복수응답으로 진행된 추가질문에 따르면 고졸출신으로 무시와 차별을 받았다는 응답이 13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업무와 무관한 잡다한 일(125명),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 미지급(107명), 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미준수(103명)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임금차별, 성희롱, 성차별, 부당 해고 등을 당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겪는 노동실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심층인터뷰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들도 드러났다. 참여자 중 상당수는 본인이 고졸자로 차별받고 있음에도 이를 당연히 여기거나 사업자가 근로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도 본인 탓으로 여기고 있었다. 학교에서 소개해준 기업에 취업하거나 현장실습과 연계해 취업한 경우에도 최저시급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기업 및 공사 취업의 경우 일정 시기가 지나면 바로 해고해 버리는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특성화고 졸업자의 안정적인 일자리 정착을 위한 제도적·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들 스스로가 부당한 대우를 인지할 수 있도록 노동인권교육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아울러 조사를 진행한 경기비정규직지원센터 측은 “현장실습생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특성화고 졸업자에 대한 추적조사 등을 통해 이들이 처하게 될 실질적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파악 및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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