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 작가

[고양신문] 공자 말년의 이야기다. 공자는 55세에 고국인 노나라를 떠나 자신이 쓰일 곳을 찾아 중국천하를 돌아다녔다. 10년 넘게 돌아다녔지만 공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난리통에 온갖 고생을 했는데,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상황에서 굶주리게 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정나라에서는 길을 잃어 제자들과 헤어지기도 했는데, 제자들이 사방팔방으로 공자를 찾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인 자공에게 “이마는 성인이신 요임금과 닮았고, 목은 명재상 고요와 비슷하며, 어깨는 정나라의 재상인 자산과 비슷하고, 허리 밑으로는 우 임금보다 세 치나 모자란 듯 사람 말이요. 그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더이다”라고 말해서, 그에게 스승의 행방을 알아내어 공자를 찾았던 사건이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되어 있다. 제자들이 공자를 찾은 후, 길거리의 사람의 이야기를 공자에게 전하자, 공자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외모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과 비교되지는 못하겠지만, 처지는 상갓집 개가 맞구나”라고 말했다. 이후로 공자의 별명이 되었던 ‘상갓집 개’는 돌봐줄 주인을 잃은 개, 초라한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며 천시당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상갓집 개는 누구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자유청소년도서관의 주인집 개 신세가 바로 상갓집 개다. 젊은 주인은 앰블런스에 실려가고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그의 부고소식을 들었던 날, 비가 내렸다. 젊은 주인의 형이 도서관으로 찾아와 주인집 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물었다. 건물 지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개를 데려가지 말라고 하신다. 식사하고 남은 음식으로 밥을 챙겨주시겠단다. 동네 편의점 주인도 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챙겨주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개의 주인은 죽기 얼마 전 이 늙은 개에게 먹이기 위해 생선을 두 박스나 시켜놨다고 형이 전했다. 나는 형에게 가끔 산책을 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형은 가끔 자신도 돌보러 오겠다며 건물에 있는 세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차에 올랐다. 종일 내린 비로 머리와 옷이 다 젖었는데도 개의치 않아보였다. 아마도 정신줄이 반쯤은 풀렸으리라.

건물주의 형이 떠나자, 나는 뭉게를 처다보았다. 사실 개의 이름이 뭉개인지, 뭉게구름에서 따온 뭉게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확인할 수조차 없다. 작명을 한 주인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뭉개인지 뭉게인지는 모르지만, 이 늙은 잡종개는 비를 처량하게 맞으며 2층을 바라보고 있었다. 2층은 평소에 건물주가 살던 곳이었다. 그곳에 주인은 없다. 이제 뭉게는 버려진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 늙고 더러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개, 만약에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외면했다면 아마도 팔려서 고깃감으로나 쓰일 개였다. 하지만 주변에 건물주를 알고지내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개를 돌보겠다고 말한다. 이 상갓집 개는 평소 주인이 주변에 베풀었던 덕을 주인이 죽고 나서 자신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까?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으면 굶어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그렇게 끈끈한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지 않지만, 이 상갓집 개의 불쌍한 처지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뭉게는 주인 없이 골목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버림받지 말아야 한다. 비록 개의 신세일지언정, 늙어죽을 권리는 있는 것이다. 골목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이러한 정신에 동의하고 있었다.

뭉게는 아마도 지금쯤이면 주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아무리 2층을 올려다보아도 주인은 내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보살핌은 계속된다. 주인이 없거나 있거나.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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