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창간 30주년 기념호를 발행하며

1989년 6월 1일자 고양신문 창간호 첫 제목은 ‘1989년, 일산의 봄’. 일산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 시작된 반대시위를 다룬 기사였습니다. 사진에는 경운기를 타고 거리로 나선 주민들의 시위행렬이 담겨있습니다. 시위대의 얼굴은 암울하고 비장합니다. 다른 언론에서는 화제의 뉴스였지만 고양신문엔 아픈 뉴스였습니다. 거대한 개발의 소용돌이가 이웃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과 박탈감에 밀려 주민 4명이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90년 수해로 일산은 물바다가 됐고, 보상이 시작됐습니다. 

고양신문은 이후 일산신도시 문화유적조사의 부실함을 고발하고, 철거를 앞둔 정발산 밤가시 초가의 보존가치를 역설합니다. 문화유적조사가 다시 진행되면서 고양의 역사는 물론 한반도의 역사 기록을 바꾼 5000년 전 재배볍씨가 발굴됩니다. 밤가시 초가는 400만 평 일산신도시에 유일한 옛집으로 살아남아 박물관이 되었지요. 일산신도시의 자족기능으로 배치된 출판단지가 무산되고 국제회의장도 무산됐다는 뉴스를 전하며 주민 반대시위의 물꼬를 트기도 했고, 여세를 몰아 킨텍스 유치 서명운동에 6만 명이 동참, 킨텍스가 고양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여론적 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하철 3호선이 원당을 거치지 않고 삼송에서 화정으로 바로 간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리며 원당역 유치운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원당지역 주민들과 고양신문은 지방선거라는 절호의 찬스를 잘 공략하면서 6개월 만에 원당역 신설을 약속받습니다. 언론사인지 시민단체인지 우리 스스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보도를 넘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보도하고, 참여하는 실천 저널리즘의 길을 고민할 때도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지역에서 신문을 만든다는 것은 이웃과 함께하는 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역신문에 주어진 특혜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여론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와 요구가 다른 시민들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간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고양신문이 이 여론의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놓친 일도 꽤 됩니다. 모든 고양시민이 공분하는 킨텍스 옆 아파트단지 허가문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고양신문이 제대로 취재하고 제대로 여론을 대변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양신문이 서른 살이 됐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1422번의 신문, 1만7304개의 지면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이 대세인 새로운 언론시장에서 종이를 부여잡고 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 다음 주 신문을 준비합니다. 어떤 분들은 고양신문이 대단하다고 하시지만 사실 고양신문보다 배로 대단한 분들은 고양신문 독자입니다. 지역신문에 월 1만원의 구독료를 투자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돈의 가치가 아니라 마음의 가치로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가치로 투자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는 한 고양신문은 지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독자의 응원에 힘입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일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고양의 이웃 한분 한분이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가는 시민의 플랫폼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깊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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